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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란트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 (171) - 이자익 목사 ②
[[제1609호]  2018년 9월  8일]


李自益  牧師, 1879-1958

섬김에 본을 보인 목회자

이자익은 장로가 된 다음 1909 9월 전북 대리 회에서 테이트 선교사의 조사로 임명되어 전도를 시작하였다. 조사는 선교사를 도와 교회를 순방하면서 설교하고 학습 교육과 문답을 하였다. 이자익 조사는 테이트 선교사를 도와 두정리와 구봉리를 비롯한 18개 지역의 순회 조사로 활동하면서 두정리 교회(현 금산교회)l에서 구봉리 교회(현 원평교회)를 분립하였다. 이자익의 공식적인 목회사역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1909년 멀리서 오는 교인들이 많아지자 삼길교회와 원평교회를 분립시켰다. 금산교회 교인수가 50명이 넘게 되어 장로를 선출하게 되었다. 조덕삼 영수가 선출되었다. 두 사람은 열심히 교회를 섬겼다. 1910년 조덕삼 장로가 이자익 장로의 학비와 생활비를 책임지기로 하고 평양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여 1915년 제8회로 졸업했다. 동년 8월 전라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으며, 최의덕 선교사의 동사목사로 금산교회에 부임하였다. 그 교회의 마부로 출발한 사람이 세례를 받고, 영수가 되었으며, 장로가 되었고, 신학교를 졸업한 즉시 금산교회의 목사로 청빙하는 데 대하여 노회에서는 모두 놀랐다. 이렇게 좋은 전통이 이루어진 것은 이자익 목사의 훌륭한 면이 있었음은 물론 조덕삼 장로의 겸손과 존경의 덕이 컸으며 그 뒤에는 복음을 전해 준 최의덕 선교사가 그들의 믿음의 스승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19년 전라노회에서 전북노회를 분립하였다. 여기에 이자익 목사의 노력이 매우 컸다. 그러므로 초대 노회 장에 선출되었으며 다음 해에도 계속 노회장을 맡았다. 그는 행정능력이 탁월했다. 조직에서부터 운영하는 데까지 빈틈없이 이루어갔다. 그의 명성은 전국 교회에 미쳤으며 금산교회의 미덕 또한 아름다운 이야기로 전달되었다.

1920 4월 그는 당시 호남 굴지의 교회인 군산 개복동교회와 구암교회로부터 온 위임목사 청빙도 단호히 거절하고 농촌교회인 자기가 설립한 금산교회를 떠나지 않았다. 1921 8월에 전북노회에 보고된 양 교회의 통계는 이자익 목사의 봉급이 구봉리교회가 203, 팟정리교회가 120원으로 모두 323원이었다. 나중 이야기지만 1952년 함태영 목사가 부통령이 된 후 이자익 목사에게 교통부와 체신부의 내각으로 영입하여 전후의 정부 재건에 큰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하였다. 입각 교섭을 받은 이자익 목사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지금까지 목사로 살았으니 앞으로도 목사”로 종신하겠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13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함경북도 함흥읍 선창리 교회당에서 1924 9 13일에 개최되었다. 19개 노회에서 파송된 총대 선교사들까지 합해서 196명이었다. 총회장은 함태영 목사였다. 투표결과 당시 부총회장이었던 안승원 목사가 아니라 이자익 목사가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3회 총회 총회장에 당선되었다. 신학교를 졸업한지 9년만이요, 그의 나이 45세였다. 이자익 목사보다 더 훌륭한 목사가 많았다. 금산교회는 전라북도에 위치한 농촌교회이며 교세는 200명 정도이다. 평안도나 황해도에 큰 교회 목사들이 많았다. 부회장으로 당선된 임택권 목사도 그보다 신학교 1년 선배였으며 일본 고베 중앙신학교를 졸업한 분이었다. 그러나 이자익 목사가 총회장으로 당선되었다. 일부 총대들은 그가 총회를 잘 이끌어갈 것인가를 염려했다.

그의 총회장 당선을 가장 기뻐하고 축하한 사람은 그에게 복음을 전해준 최의덕 선교사였다. 이자익 목사는 총회장이 된 후 처음으로 1천 명이 넘는 회중 앞에서 설교했다. 총회장으로 사회봉을 잡은 이자익 목사는 많은 헌의 안을 각 부서로 이관하고 그 부서에서 결정된 사건을 본 회의에 보고하도록 하였다. 총회장으로 모든 회의 안건을 침착하고 분명하게 처리하였다. 남대리(L. T. Newland) 선교사는경이로운 사회자’라는 말로 그를 칭찬하였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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