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로신문
뉴스오피니언교양피플미션말씀특별기고 | 지난연재물
[제1660호]  2019년 10월  12일
기사검색
전장연 총회 교단 교계 동정 연합기관행사일정 특별기획 포토에세이
교계이슈
특집
기타
Home > 특별기고 > 교계이슈
달란트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 (170) - 이자익 목사 ①
[[제1608호]  2018년 9월  1일]


李自益  牧師, 1879-1958

섬김에 본을 보인 목회자

이자익은 1879 7 25일 경남 남해군 이동면 다정리 섬마을의 장수 이씨 이기진(李基珍)과 박정근(朴定根) 집안에서 독자로 태어났다. 3살에 부모를 여의고 친척집에 맡겨졌으나 그 집도 가난하여 배가 고팠다. 그는 부자 집 머슴이 되면 배불리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14살에 친척집을 떠나 배를 타고 여수로 갔다. 몇몇 곳을 거쳐 17살에 김제로 가서 그곳의 거부였던 조덕삼 집에 마부가 되었고, 성실하여 주인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청년기에 접어든 이자익은 마부를 그만두고 장사하여 안정된 생활기반을 마련하였다. 그가 마부로 있을 때 선교사로 순회 전도를 다니던 테이트(최의덕) 선교사가 조덕삼 집에서 유하는 때가 있었다. 그때면 이자익이 그의 말을 먹이고 밤에 잘 쉴 수 있도록 보호하였다. 몇 차례 안면이 있게 되었을 때 테이트 선교사는 밤에 전도하였다. 이때 조덕삼과 이자익이 성령의 역사로 예수를 믿게 되었다. 1904년 이자익은 조덕삼과 함께 최의덕(Liwis boyd Tate) 선교사의 인도로 조덕삼의 집에서 예배를 시작하여 두정리교회(금산교회 전신)를 개척하였다. 같은 해 이자익은 테이트 선교사의 주례로 김선경과 결혼했다.

1906년 세례를 받고 교회의 영수로 임명되었다. 1907 11월경 통계로 보면 세례교인 75명이요, 전체 교인 수는 200여 명이었다. 한 때 이자익은 조덕삼의 머슴 마부였으며, 교회에서는 같은 위치라 해도 재산으로 보나 지역사회의 인지도로 보나, 비교할 수 없는 두 사람이었다. 그러나 교회 성도들이 장로를 선출하기 위해서 투표하니 조덕삼 보다 이자익의 표가 월등하게 많이 나왔다. 그 결과 1908년 두정리교회 초대 장로가 되었다.

최의덕 선교사가 매주일 올 수 없으므로 이자익 장로가 주일 낮, 저녁, 수요일까지 설교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교회의 특징은 매우 훌륭했다. 1893년 설립된 서울의 승동교회는 백정 출신인 박성춘 집사가 장로로 선출되었을 때 여기에 반발한 양반들이 나가서 안동교회를 설립했고 서울 연동교회에서는 1894년 갖바치 출신 고찬익 집사가 먼저 장로로 선출되었는데 양반들이 이탈하여 종묘 근방에 묘동교회를 설립했다. 그러나 금산교회에서는 자기 집에서 마부로 일하던 이자익이 주인 조덕삼보다 먼저 장로로 장립을 했는데도 조금도 문제가 없었으며 오히려 조덕삼이 성도들을 향해서이자익 영수는저보다 믿음의 열의가 훨씬 높고, 정말 훌륭한 분’입니다”라고 격려하였다는 것은 최의덕 선교사의 복음 선포와 바른 목회가 만들어낸 영적 리더십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조덕삼 영수는 이자익 장로를 극진히 섬겼다.

조덕삼 영수는 예배당을 건축하기 위하여 자신 소유의 과수원 농장을 헌납하였다. 그때에 이자익 장로는 성도들과 함께 모악산에 올라가 아름드리 소나무를 베어다가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이자익이 조덕삼과 협의하여 1907 3 2일 예배당 건축 기공 예배를 드렸다. 건물구조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중부지방의 단층 고패집 형태로 하였다. 남북으로 다섯 칸 집을 앉히고 북쪽 모서리에서 동쪽으로 두 칸 집을 이어 붙여 외형으로 보면ㄱ’ 자를 뒤집어 놓은 형태인데 모두 합쳐 27평의 건물이 되었다. 그리하여 예배당 왼쪽은 여자석이요, 오른쪽은 남자석이었다. 그리고 가운데 천으로 막을 쳤다. 이것은 유교 전통에 의해서 남녀가 한 자리에 함께 앉을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한 것이었다. 상량문은 조덕삼이 직접 써 넣었다. 남자석에서 위를 보면 천정에 상량문이 있는데 한자로 고후 5:1-6이었고 여자 신도석은 고전3:16-17을 한글로 썼다. 이렇게 지어진 금산교회 예배당은 좋은 나무로 지었으므로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다. 1908 4 4일 헌당식이 거행되었다. 인도: 이자익 장로, 설교: 최의덕 선교사, 축도: 배유지 선교사였다. 이 교회는 1997 7 18일 전라북도의 문화재 자료 제136호로 지정되었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 저작권자 ⓒ 장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저작권문의
이번호 많이 본기사
기드온의 ‘금 에봇’
타락한 천사, 사탄, 루..
[장로] 평생을 교회·..
147. 철종의 가계도 ..
<94-총회총대5>
332. ‘기도합니다’와..
59. 초락도 금식 기도..
“사나 죽으나, 선하게 ..
<94-총회총대4>
331. ‘고범죄’에 ..
만평,만화
어느덧 가을, 열매맺는 계절되길.....
아름다운 우리 말, 우리 겨레
104회 총회 감사!
공지사항
[정기휴간]5월 10일자
[9월 28일자] 추석연휴 휴간..
회사소개구독신청 지사 Contact Us Site Map

한국장로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 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 등을 금합니다.
청소년보호책임자: 이승담 | Copyright (c) JANGRO.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