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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초대석>박숙란 장로 - 본 교단 최초 여장로
[[제1173호]  2009년 3월  14일]
 

“지금의 백병원은 기도와 응답의 결실입니다”


본 교단에서 여장로가 탄생한지 15년째를 맞고 있다. 아직은 전체 장로수의 2.5% 남짓하지만 일단 그 존재만으로도 여장로의 존재는 의미있는 일. 여장로들도 점차 일부 교회에서도 중요한 역할로 자리매김을 해가고 있다.

 

박숙란 장로, 인제대학교를 설립하고 전국 곳곳에 백병원을 설립한 백낙환 박사가 그녀의 부군이고 1970년대 중반의 코리아게이트 사건으로 당시 박정희 정권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장본인인 박동선 씨가 그녀의 동생이다.

 

3월7일 금주의 초대석 첫 여성 주인공이 된 박숙란 장로(79, 안동교회)를 교회에서 만나 그 신앙여정을 들었다.


평안남도 순천의 한 시골마을이 박숙란 장로가 자란 곳이다. 그의 어머니인 고 김순식 권사는 처녀 때부터 믿음을 가졌다. 김순식 권사는 후에 학교법인 숭의학원 이사장 등을 지냈고 경기도 남양주시에 월문교회를 건축하는 등 여성교육을 통한 계몽과 돈독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주님의 사업을 열정적으로 행했다. 또 절제를 통해 교역자들과 가난한 이들을 돌보았다. 2002년 은퇴한 박숙란 장로도 어머니의 기도와 신앙 유산이 없었다면 장로가 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박숙란 장로는 1946년 16세로 월남해 안동교회에 출석했다. 1953년에는 이화여대 채플에서 세례를 받았고 32세때 교회 집사가 됐다. 이 후부터 어머니를 따라 여전도회전국연합회에 많이 참석했다. 후에 박숙란 집사가 첫 여장로가 된 후 여전도회연합회를 찾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했지만 당시 이연옥 회장이 그를 알아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었다는 일화가 있다.


“장로 1호가 된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는데 모두들 언제 여전도회 회장을 했느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못했다고 하니 의아해 하더군요. 그런데 이연옥 회장님이 38살 때부터 총대로 몽이 불편하신 어머니 대신 많이 활동했었다고 하시더군요. 그 때 계셨던 분들이 이때에는 거의 없어 잘 알아보지 못했나 싶습니다.”


그녀는 54세 때인 1984년 권사로 피택된 데 이어, 1988년 후반부터는 인제대 총장인 부군 백낙환 박사를 따라 부산으로 내려가 서울-부산을 오가며 구역장직을 성실히 수행할 수 있었고 1994년 장로로 피택되었다.


“당시 구역장을 맡았는데, 다른 구역은 11시에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부산을 오가는 지라 오후 3시에 모임을 가졌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당시 교단에서는 법으로 여성 안수 제도가 정해져 있지 않아 안동교회에서는 ‘장로 대우 권사’라는 호칭을 주었고 당회에서 언권회원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이어 장로 장립 후에는 1996년 노회 총대로, 1998년에는 총회 총대로 소망교회에서 거행된 83회 총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피택 전후로 약 5년 정도 장로 역할을 대신했나 봅니다. 대예배 기도도 하고, 당회 참석도 해서 의견을 개진하고, 훈련방식과 권한을 여타 장로님들과 거의 비슷하게 행사했습니다. 


그녀의 부군인 백낙환 박사와는 1955년 9월1일 결혼했다. 당시 박숙란은 사진으로 맞선을 보고 약혼을 한 후 결혼을 했다. 박숙란은 백 집사에게 교회 다닐 것을 전제로 이금식 목사 주례로 결혼을 했다고 말했다. 결혼 당시 백낙환 집사가 운영하던 서울 저동의 백병원은 신축건물이 아니라 오까베집이었다. 오까베 집은 당시 유행했던 일본식 주거형태로 일종의 임시가옥과 같다. 초창기 백병원은 외과만 진료했다. 의사 8명에 간호사 12명이 있는 가운데 앰뷸런스도 없었다.


“마침 주변에 있던 영락교회에서는 다른 시설을 거의 모두 갖췄는데 의료시설만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병원을 지을 목적으로 헌금을 모으니 작정한 것을 합쳐 모두 필요한 규모보다 더 많은 6억원이 걷혔더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큰어머니께서 영락교회로 병원을 넘기고자 하셨던 것 같습니다. 큰 어머니는 아마 당시 많았던 부채와 아직 어린 조카와 아들에 부담을 가지셨던 모양입니다.”


“시어머니가 계실 때는 집안일이라 얘기 못하고 지금에야 털어놓는데 하나님은 현몽을 통해 저희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셨고 이내 백병원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오까베 벽을 두드리면서 하나님 나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라고 매달렸죠. 하나님은 참아라. 참으면 이뤄주신다는 응답을 주셨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기도를 하면 주님께서는 다 이뤄주신다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어머니를 잊을 수 없군요. 쓰러지신 후 회복 가망이 없다는 어머니를 병간호하며 눈물로 지새울 때 ‘’내 영혼이 은총입어‘라는 찬송가가 가장 의지가 되어 주었습니다. 지금도 힘들고 괴로울 때는 주기도를 외우고 찬송을 부르며 다시 힘을 얻습니다. 성경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며 늘 암송했던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그녀의 가장 간절한 기도제목은 ‘통일’이다. 두고 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지금도 여전하다. 또 이제 2세기를 향해 가는 안동교회가 황영태 목사님 이하 교역자들과 모든 성도들이 단합하고 서로 사랑하고 마음 합하고 섬기는 공동체가 되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백병원 건축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내년 3월경이면 부산 해운대에 건축될 예정이다. 1천4개 병상 규모의 최첨단 시설이다. 


“이른바 IMF 시절 일산백병원을 건축할 때였죠. 지하 5층을 파고 있을 때는 가물었는데 지상에 올라와서 콘크리트공사를 했을 때 비로소 비가 오더군요. 그래서 백집사에게 당신이 하나님 덕을 가장 많이 보고 있다고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인데 해운대병원 건축에도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내려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그래서 그 병원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많은 목숨을 살리게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박숙란 장로는 유난히 몸이 약하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고 은퇴후에는 양팔 골절과 함께 교통사고로 수개월동안 요양도 했다. 물론 여든을 앞두고 있지만 수술도 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오래 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했다. 


박숙란 장로에게는 백낙환 박사와 사이에 계형, 도형씨 가족이 안동교회에 출석하고 있고, 딸 수경씨 가족은 충현교회를, 진경씨 기족은 덕수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이덕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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