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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원 장로 ‘사람을 살리는 정의로운 판결 위해 기도’
[[제1158호]  2008년 11월  19일]
 

금주의 초대석5


김상원 장로

전 대법관/ 법무법인 한누리 고문변호사

한국기독교화해중재원장/ 일가재단 이사장

기성 장충단교회 원로장로


사람을 살리는 정의로운 판결 위해 기도

청년시절 ‘새벽종’과 ‘십자가’ 통해 신앙입문


 신앙인으로서의 법조인은 보다 무거운 책임과 노력이 뒤따른다. 솔로몬과 같은 지혜가 필요한 자리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생명들을 살리냐 죽이느냐 하는 판단을 나 자신이 내려야 한다는 중압감에 고뇌도 많다, 그렇기에 법조인들에게는 남다른 신앙관과 함께 투철한 정의감과 부지런함이 뒤따른다. 과반세기 넘게 법조계에서 봉직한 김상원(金祥源) 장로(75)는 지금도 하나님의 섭리를 실감하며 지금까지 법조 생활을 과오 없이 해내고 있다는 데 대해 감사를 드리고 있다.


 

미신을 믿는 불신자 가정, 빈농 가정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김상원 장로는 그를 통해 온 가정이, 또 나아가 주변 종가 친척들이 주님을 영접한 특이한 케이스다.

 

또 김상원 장로는 농과대 출신으로 법관이 되었고 또 유신정권 이후 재야변호사 중 처음 대법관으로 임용된 재야변호사 출신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인생을 걸어왔다. 그러기에 김 장로는 그 때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체험하게 된다.


김상원 장로가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은 수원에 소재한 서울대 농경제학과 2학년 때이다.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죽당리가 고향인 김 장로는 이천농고를 나와 동일계열인 농대로 진학, 수원에서 자취생활을 했다. 그리고 그는 자취방 인근의 수원중앙침례교회에서 들리던 새벽 종소리와 십자가를 통해 신앙인으로 들어서게 된다.

 

마침 젊은 청년의 때에 높은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에서 오는 고민 속에서 십자가를 보면 왠지 마음이 이끌렸고 새벽 종소리를 들으면 왠지 마음이 평안해졌다. 이내 이순호 장로의 권면과 기도로 주님을 영접하기에 이르렀다.

 

김상원 장로의 전공인 농경제학과는 유일한 이론학문으로 당시 법학 여러 과목을 함께 수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김 장로는 당초의 농업경제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고 법률 과목의 논리성에 매료되고 또 사회정의에의 실현 등에 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고시준비에 나서게 되고, 대학 4학년 때 행정고시, 졸업 직후인 1957년에 사법고시 양과에 각각 합격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김 장로는 졸업 직후 한 부흥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성령의 체험을 하게 되고 이 감격을 부모님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계기로 만들었다.

 

김상원 장로는 1960년 대구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했던가. 5공정권 초기, 1981년에 신군부가 기존 법관을 재심사하는 법이 만들어졌고 이내 이른바 ‘국가관을 빌미로 한 길들이기’에 따라 서울고법 수석부장을 끝으로 법복을 벗게 된다.

 

“최고 법관이 되겠다는 소망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당시의 박봉에 비해 7년 2개월 동안의 변호사 시절을 통해 다소 경제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 때 4자녀를 결혼시킬 수 있었다고 김 장로는 웃음을 지었다.

 

김상원 장로는 1988년 대법원장이 대통령에게 제청하고 국회 동의를 받은 후 대통령이 임명하는 절차에 따라 대법관으로 임명을 받게 된다. 이는 유신 이후 재야변호사 임용의 첫 사례가 되었다.“

 

“1994년 대법관 시절을 끝내기 까지 되돌아보면 기억에 남는 판결이 있습니다. 1969년 형사재판으로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22명이 입건됐지요. 위친계(친목을 가장한 계)모임을 조직해서 반국가단체활동을 했다는 혐의였습니다.

 

주범에게 10년이 선고 되는 등 중형이 내려졌습니다. 고법 항소시 고법에서 주심을 맡았는데 물적 증거가 충분치 않고 고문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경찰관들을 불러 심도 있게 재심리한 결과 가벼운 반공법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전원 무죄 판결을 했으며 검찰의 상고도 기각되었습니다.”

 

“신앙인으로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는 남다른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로스쿨을 졸업하고 시험도 봐야하고 법조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사명과 자세, 직무, 실무 등에 빈틈이 없어야 합니다. 남을 판단하고 시비를 가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법률에 인접한 교양도 습득해야 하고 소신에 따라 양심있는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거기에 신앙인들은 투철한 신앙관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가치관이 필요합니다.”

 

김상원 장로는 고비 때마다 요한복음 15장16절과 요한삼서 1장2절과 로마서 8장 28~30절을 즐겨 묵상한다. 특히 요한복음에서 “주님이 나를 선택하셨다”는 부분을 통해 나를 법조계로 부르셨고 법복을 벗고 변호사의 길을 걷다가 대법관이 되게 하신 순간순간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놀라운 은혜를 체험한 데 대한 감격으로 ‘나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가를 즐겨 부르고 있다.

 

김상원 장로에게는 박금천 권사와 2남2녀의 자녀가 있다. 그 중 두 아들 과는 법조의 길을 함께 걷고 있다. 삼부자(三父子)는 함께 ‘법무법인 한누리’에서 김 장로는 고문으로 장남 김주현 씨는 대표로 일하고 있고 차남 김주영 씨는 증권, 집단소송 전문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매일 성경 3장을 읽고 감동되는 부분은 노트에 필기하고 더 감동 있는 부분은 암송하기를 십 수 차례, 그리고 여기에 영어성경을 쓰는 등 김 장로에게 있어서 말씀 묵상과 기도는 생활 그 자체이다.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는 방법은 이것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 장로는 우리에게 정의가 무엇이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고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노력하는 진솔한 삶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준다. 그리고 그 모습은 지금도 그 얼굴을 통해 나타나는 ‘온화함’속에서 증명되고 있다.

 

/이덕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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