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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건국대통령 이승만 장로 편 - 이승만을 “당대의 영웅적인 항일 투사”로 격찬한 맥아더
[[제1568호]  2017년 10월  21일]


이승만과 맥아더,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많았다. 명석한 두뇌, 추종자들을 열광케 하는 카리스마, 결단코 주변에 도전자를 허용치 않은 경쟁심, 일본 제국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강렬한 적개심, 그리고 자신과 조국을 동일시하는 독특한 에고(ego)와 영웅심, 독실한 기독교 신앙 등, 놀랄 만큼 비슷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오래되었다. 이승만이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할 때, 맥아더가 소령이었던 시절부터 알아왔다. 맥아더의 장인이 이승만이 한국 독립을 지지하는 미국인들을 모아서 결성한 한국 친우회의 멤버이기도 했다.

맥아더가 당시의 미군으로서는 드물게, 동양을 이해하는 인물이었다는 점도 두 사람의 친교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동양, 특히 극동 지역에 대한 맥아더의 관심은 청년 시절부터였다. 그의 아버지 아서 맥아더 장군은 1905년 테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특별 군사 사찰 단장으로 러일 전쟁을 관전하기 위해 한반도와 중국 북부에 파견되었다.

이때 청년 맥아더가 동행했고, 그때부터 극동 지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사령관이 된 맥아더는 1937년 이후 1951년에 해임될 때까지 15년간 줄곧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머물렀다. 이 기간 중 미국에는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이니, 글자 그대로 아시아에 사는 사람이었다.

맥아더는 독립운동가 이승만을 결단성 있고 타협할 줄 모르는 당대의 영웅적인 항일 투사라고 격찬했다. 시대를 앞서가는 반공주의자였던 맥아더에게, 국제 정세를 같은 방향으로 읽고 있던 이승만의 대통령 취임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존경했던 노()애국자이자 오랜 친구가 자신의 나라를 건국할 때 직접 참가했다.

1945815, 중앙청에서 열린 건국 기념행사에서 맥아더는 진심이 담긴 연설을 했다. 그는 1882년 한미수호통상조약을 상기시키며 한국에 대한 지원을 약속한 뒤에 말했다. “이 대통령 각하, 귀하와 신생 공화국을 돕기 위해 선출된 훌륭한 지도자들은 이제 정치적 경험으로서는 가장 복잡한 과제들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문제들을 처리하는 방법에 따라 여러분 국민들의 단합은 물론 아시아의 장래가 결정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 하기를.”

맥아더에 대한 이승만의 호의도 각별했다. 맥아더의 아버지 아서 맥아더 장군이 19세기 말 조선에 들렀을 때, 고종 황제는 향로를 하사품으로 선물했다. 하지만 맥아더는 2차 대전 중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향로를 잃어버렸다. 아버지의 유품이자 대한제국 황제의 하사품을 잃고 맥아더는 매우 애석해했다.

그 정보를 입수한 이승만 대통령은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결국 맥아더의 아버지가 받았던 것과 같은 종류의 동제 향로의 소재를 찾아냈다. 그리고 건국의 날에 서울에 온 맥아더에게 바로 그 질동제 향로를 선물했다. 각별한 관심이 담긴 특별한 선물이었다. 이승만에게는 이렇게 섬세한 면도 있었다. 맥아더가 얼마나 감격하고 감사했을 지는 눈에 선하다.

대통령은 질동제 향로 1좌를, 국무총리는 순은제 신선로 1좌를, 그리고 조선 왕가의 순종비 윤씨는 청옥 화병을 각각 예물로 맥아더 부부에게 선사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도쿄로 돌아가던 맥아더는 절친 이승만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말했다. “만일 한국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침공을 받는다면 나는 캘리포니아를 방위하는 것처럼 한국을 방위할 것입니다.”

신문들은 맥아더의 발언을 보도하면서, 단순하고 경망한 감상주의적 표현이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훗날 맥아더는 자신의 말을 그대로 지켜서 이 나라를 위해서 싸웠다.

맥아더와 함께, 6.25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 존 포스터 덜레스(John Foster Dulles)이다. 그는 미국의 빠른 참전을 유도해서 대한민국을 살렸고, 이승만을 제거하려는 미국의 계획에 제동을 걸었으며 한미 동맹을 성사시킨 인물이다.

덜레스 역시 이승만이 공을 들여 관계를 맺은 인물이었다. 두 사람은 조지 워싱턴과 프린스턴 동문이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도 이승만 개인의 프로필이 대한민국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6.25전쟁 직전, 덜레스는 미국 국무부 고문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이 계획을 사전에 탐지한 장면 주미 대사는 즉각 서울로 와서 소식을 전하면서 전략을 세웠다. 미국 정계의 거물이었던 그를 국빈으로 융숭히 대접할 것,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38선을 시찰시킬 것, 가능한 한 국회연설을 시킬 것 등을 건의하고 덜레스의 한국 방문에 따른 사전 준비와 공작을 위해 서둘러 워싱턴으로 돌아갔다.

이승만과 장면, 조병옥은 라이벌로 유명하다. 최고 지도자의 자리를 놓고 이승만 대 장면, 이승만 대 조병옥, 장면 대 조병옥의 대결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국 초기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들은 명콤비였다. 유엔에서의 승인 외교, 덜레스 방문, 한국 전쟁 이후의 대미 외교에서 성격과 개성이 전혀 달랐던 세 사람은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주었다.

권력에 도전하는 것은 정치인의 본능이며 숙명이다. 정치인이기에 어쩔 수 없는 순간에는 치열하게 싸웠지만, 나라를 세우고 살리는 과정에서는 손발이 척척 맞아들어 갔다. 싸울 땐 싸우더라도, 나라를 위해서는 협력할 줄도 알았던 건국 세력들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이 가능할 수 있었다.

이호 목사

<신안산대 겸임교수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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