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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건국대통령 이승만 장로 편 - 1947년 美 설득, 결국 信託을 무효로 만들다
[[제1543호]  2017년 3월  25일]

미국에 한국을 알리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던 올리버가 1943년에 쓴 책의 제목은 잊혀진 나라 한국이었다. 제목 그대로 한국은 미국에게 잊혀진 나라였다. 하지만 특급 외교가 이승만의 활약은 잊혀진 나라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했다.

이승만을 통해서 <뉴욕타임즈> 등 주요 언론매체들은 한국은 내란의 위기 직전에 있다.”, “북괴군 50만이 남침을 준비 중이다.”, “하지(John R.Hodge)는 한국을 소련에 팔아넘기려고 한다.”, “미국은 즉시 독립을 주던가 아니면 소련과 함께 물러가라.”, “30일 내지 60일 이내에 남한에 군정을 인계할 과도 독립 정부가 수립될 것이라는 등의 흥미진진한 기사를 보도하였다. 워싱턴 정가에서 코리아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독립운동가 시절, 국무부는 이승만에게 적대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도 이승만을 한국 국민들의 지도자로 대했다. 국무부 피점령국 담당차관보 존 힐드링(John Hilldring) 장군은 맥아더와 절친했으며, 평소 이승만을 존경하고 있었다. 이승만과 힐드링의 회담은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2차 대전 이후로 이승만이 가졌던 오랜 불안은 미국이 한국을 흥정의 대상으로 삼아 소련에 넘겨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워싱턴을 방문하고 힐드링을 만나면서, 이승만의 불안은 사라졌다. 이제 그의 관심은 한국인들이 자치 능력이 없다는 구실 아래 독립이 지연될 것이라는 생각에 쏠려 있었다.

그때 또 한 번 세계 정세의 타이밍이 이승만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오랫동안 소련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공산주의에 대해 협력적인 태도를 취해왔던 미국의 정책이 하루아침에 뒤집어져버린 것이다. 발단은 그리스와 터키였다. 소련의 지원을 받은 공산 세력은 그리스의 합법적인 정부를 무너뜨리려고 했다. 소련은 터키에 해군기지를 설치하여 서방 국가들을 위협하려고 하고 있었다.

트루먼은 소련의 팽창주의에 맞서는 보다 근본적인 정책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독일 및 일본과의 전쟁에서 같은 편에 선 동맹국이었던 소련을 주적(籌摘)으로 설정하는 전략상의 일대 변화였다.

트루먼 독트린’(The Truman Doctrine)으로 역사에 남은 연설은 1947312일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18분 동안 이어졌다. 트루먼은 그리스와 터키를 도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 뒤 이렇게 말하였다.

세계 역사의 현 단계에서 거의 모든 나라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양자택일(兩者擇一)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하나는 다수의 뜻에 따르는 체제로서 사람들은 자유로운 제도, 대의(代議) 정부, 자유선거, 개인의 자유, 언론과 종교의 자유, 그리고 정치적 압제로부터의 자유를 누린다. 다른 하나는 소수가 다수에 강제(强制)한 삶의 양식인 바, 테러와 압제를 동원하여 신문과 라디오를 통제하고 선거를 조작하며 개인적 자유를 탄압한다.

나는 무장된 소수나 외부 세력이 자유민들을 복속시키겠다고 달려들 때 이에 저항하는 그들을 돕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우리가 자유민들을 도와서 그들이 그들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곧 공산주의와의 대결 선언이었다. 어설프고 성과도 없이 이용만 당했던 소련과의 협력을 포기하고 정면 대결로 나간다는 방향 전환이었다. <뉴스워크>는 이 역사적인 연설에 대하여 이렇게 논평했다. “만약 말()이 국가들의 미래를 결정한다면 이 연설이 그런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그것은 정확한 예측이었다. 트루먼의 연설 이후로 인류의 역사가 다시 쓰여 졌다. 미주리주의 농촌 출신으로 순박하고 솔직하며 용감한 품성을 지녔던 트루먼은 자신의 연설대로 신속하게 움직였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창설하여 서유럽과 미국의 집단 안보를 강화하고, 마셜 플랜으로 유럽의 전후(戰後) 복구를 도왔다.

트루먼 독트린은 적과 동지를 뒤집어 놓는 결과를 초래했다. 2차 대전의 동료였던 소련은 적군이 되었고 적이었던 독일과 일본은 아군(我軍)이 되었다. 미국은 독일과 일본을 민주화하여 경제를 부흥시키면서 이 두 나라가 서방 세계 편에 서도록 유도한다.

트루먼 독트린은 1947년이니, 1917년 공산혁명 이후 30년만이다. 미국이 소련의 실체를 직면하고 대결을 선언하기까지 30년이 걸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승만은 1917년 무렵부터 확고한 반공을 선언했다. 이승만이 미국보다 30년을 앞서간 것이다. 30년을 기다리느라고,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해야 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트루먼 독트린은 대한민국의 운명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되지도 않을 좌우 합작이나 소련과의 합의에 매달리는 정책을 점차 포기한다. 따라서 좌우 합작에 반대하고 소련의 위협에 대항하는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한 이승만의 입지가 강화된다. 이승만은 트루먼 독트린이라는 세계사의 대세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역사의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트루먼 독트린은 뜻밖에도 남한으로부터의 미국 철수를 재촉하게 된다. 유럽에 들어가는 경비가 큰 폭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국에서 극도의 빈곤이 공산당의 기반을 만들어 준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마셜 플랜(The Marshall Plan)이라는 원조 계획을 세우고 모든 재력을 유럽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경비를 더욱 삭감하여야 했다. 결과적으로 1947년 가을부터 미국은 한국으로부터 체면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철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명예를 지키면서 한반도에서 손을 떼는 방법은 유엔이었다. 미국은 소련과의 합의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한국 문제를 유엔에 상정했다. 19471114, 유엔 총회는 독립정부 수립을 위해 한반도에서 유엔 감시 하에 자유선거를 실시하는 안건을 표결에 붙였다. 결과는 430, 만장일치였다.

결국 1947년은 이승만의 미국 방문으로 시작하여 한반도에서 자유선거를 실시하고 독립정부를 수립한다는 유엔의 결의로 끝났다. 이로서 한반도에 대한 강대국의 신탁통치는 무효가 되어버렸다.

이호 목사

<신안산대 겸임교수 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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