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로신문
뉴스오피니언교양피플미션말씀특별기고 | 지난연재물
[제1650호]  2019년 7월  20일
기사검색
전장연 총회 교단 교계 동정 연합기관행사일정 특별기획 포토에세이
기독교용어해설
성경어휘심층해설
성경난해구절해설
한국교회선교비화
선교기행
신앙소설
북한통신
성경동화
수필릴레이
그날까지
철학이야기
한국역사 그 뒷이야기
5분사색
장로열전
교회와 복지
역사의뒤안길
대인물열전
Home > 피플 > 대인물열전
44.건국대통령 이승만 장로 편 - 김구와 함께 反託운동의 선두에 섰던 이승만
[[제1540호]  2017년 3월  4일]


19458월부터 1947년 초반까지의 미국의 남한 정책은 신탁통치를 실시하기 위한 소련과의 교섭을 계속하면서 중국에서의 사태를 관망하는 Wait-and-see 정책, 안개가 개는 것을 기다리는정책이었다. 신탁통치를 실행하기 위하여 미국과 소련은 미소 공동회의를 열었다. 그것은 출발부터 실패가 예정된 회의였다. 이미 소련은 분단을 확정지었고 북한에 강력한 정권을 수립한 뒤였다. 그네들이 회담에 참여한 것은 한반도에서 국제 합의를 준수한다는 모양을 내고 친소 정권을 공고화하기 위한 명분 쌓기와 시간 벌기에 불과했다.

소련 측은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결정, 다시 말해 신탁통치에 찬성하는 정당만을 받아들여서 한반도에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탁통치에 찬성하는 정당은 공산당뿐이었다. 미국은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다른 정당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소련의 회담은 잇따라 결렬되었고, 북한은 공산화에 성공했고, 남한의 공산주의자들은 한반도 전체를 붉게 물들이기 위한 투쟁에 여념이 없었다. 미국은 1949년에야 끝난 중국 내전의 상황만 지켜보고 있었다. 그냥 그대로 앉아있다가는 한반도 전체를 공산당에게 내어줄 판이었다. 누군가 움직여서 나라를 구해야 할 때, 이승만이 나섰다.

 

구국을 위한 결단, 남한 순행과 정읍 발언

신탁통치를 주장하는 공산당에 대한 싸움은 반탁운동으로 전개되었다. 맥아더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들은 자치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말이다. 동물조차도 스스로 돌보는 방법을 알고 있다.”

맥아더에 의하면 신탁통치안은 한국인들을 동물만도 못하게 취급한 것이다. 당연히 공산당을 제외한 모든 정치 세력이 신탁통치안에 거세게 반발했다. 남한의 언론들은 탁치 안은 국제적인 노예제라고 비난했다. 반탁의 선두는 이승만과 김구였다. 194612일자 <동아일보>에는 이승만의 주장이 실렸다. “탁치가 강요된다면 열국의 종속 민족으로 우리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타인에게 맡겨놓는 격이 될 것이다. 소련의 사주를 받고 있는 공산주의자들의 탁치론은 영원히 우리 반도와 국민들 팔아먹으려는 가증스러운 행동이다. 공산주의자들은 궁극적으로 한국을 소련의 위성국으로 만들려는 저의를 품고 있다.”

공산당에 대한 이승만의 비난이 거세어지고, 이에 동조하는 세력이 늘어나자, 곤란해진 쪽은 미군정이었다. 국제적으로는 소련과 합의하며 국내적으로는 좌우합작을 추진하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는 이승만의 라디오 방송 원고를 사전 검열하여 소련에 대한 비난을 삭제했다. 이승만과 하지의 대결이 점차 치열해졌다.

이승만은 반탁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며 1946415일부터 지방 유세에 들어갔다. 그의 연설 주제는 반탁과 반공이었다.

이상으로 공산주의는 그럴듯하다. 만일 이 주의를 전달하는 사람들이 이 주의를 전하는 대로 실천한다면 나도 그들을 존경할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를 선전하는 자들은 아름다운 이상으로써 양의 가죽을 만들어 쓰고 세계 정복을 꿈꾸는 소련의 앞잡이로서 공산주의를 선전하는 것이다그들은 세계 사람들에게 각각 그들의 정부를 파괴시키고 나라를 소련의 독재 하에 넣도록 훈련시키고 있다. 당신의 동생일지라도 공산주의의 훈련을 과학적으로 받았다면, 이제는 당신의 동생이 아니다. 그 동생은 소련을 자신의 조국이라고 부르며 당신의 국가 공업을 파괴하는 한편 정부를 뒤엎고 동포들을 소련에 넘겨주려 할 것이다. 그러면 드디어는 당신의 나라는 소련의 위성국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엔, 당신의 동생은 집 없는 거지가 되고 가족은 노예가 될 것이다. 이때에 이르러 잘못을 깨달아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이승만의 유세는 남한 전역을 열광시켰다. 그에게 비판적인 미군정의 여론 조사원조차 이승만이란 이름은 신비로운 후광에 쌓여있다. 유세는 돌풍적인 성공을 거두었다고 보고할 정도였다. 때론 만 명이 넘는 거대한 군중이 그늘 하나 없는 땡볕에 앉아서 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영남 유세를 마치고 호남 지역을 방문했을 무렵, 이승만에게 미국과 소련의 회담이 또다시 결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앞에서 논한 바와 같이, 북한에는 공산 정권이 수립되어 한반도 공산화를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는데, 남한은 기약도 없이 미국과 소련의 가망성 없는 합의만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조국이 위기에 처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하여, 이승만이 또 한 번의 결정적인 행동을 취했다. 이른바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이었다. 194663, 전라도 정읍 유세에서 이승만은 유명한 발언을 한다.

이제 우리는 무기 휴회된 공위(미국, 소련 공동위원회)가 재개될 기색도 보이지 않으며 통일 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케 되지 않으니, 우리는 남방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이북에서 소련이 탈퇴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하여야 될 것이니 여러분도 결심하여야 될 것이다.”

이 발언은 사실상 국내외 모든 정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모스크바 협정의 준수를 고수하던 하지에게도 폭탄이었다. 이승만의 정읍 발언이 보도되자 정국은 소란해졌다. 남한 지역에 존재하던 거의 모든 주요 정당과 사회단체들이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미군정도 그를 비판했다. 이승만이 분단을 획책한다는 비난, 민족을 두 동강 내버린다는 감상적 민족주의에 기초한 비판의 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이승만은 정치적으로 고립될 위기에 처했다.

 

이승만은 왜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했을까?

이승만이 정치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위협을 무릅쓰고 남한 단독정부수립(단정론)을 주장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를 비판하는 정치 세력이나 연구자들은 남한의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권력욕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통일 한국의 대통령이 되기 어려운 바에야, 조국을 반으로 나누어서라도 대통령이 되는 편이 낫겠다고 계산했다는 것이다.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다. 상식적으로 권력은 정치적 고립으로부터 창출되지 못한다. 권력욕이 강한 자는 권력을 잡기 위해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승만이 정치적으로 극심하게 고립되고 정치 생명에 위협을 받아가면서 남한 단정론을 주장한 것은 권력욕 때문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이호 목사

<신안산대 겸임교수 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 대표>

[ 저작권자 ⓒ 장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저작권문의
이번호 많이 본기사
기드온의 ‘금 에봇’
타락한 천사, 사탄, 루..
[장로] 평생을 교회·..
147. 철종의 가계도 ..
332. ‘기도합니다’와..
59. 초락도 금식 기도..
<94-총회총대5>
“사나 죽으나, 선하게 ..
<94-총회총대4>
331. ‘고범죄’에 ..
만평,만화
뜨거운 하나님의 사랑 체험하는 .....
교회교육이 살아야 미래가 있다!.....
폭포같은 하나님의 은혜 감사
공지사항
[정기휴간]5월 10일자
[9월 28일자] 추석연휴 휴간..
회사소개구독신청 지사 Contact Us Site Map

한국장로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 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 등을 금합니다.
청소년보호책임자: 이승담 | Copyright (c) JANGRO.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