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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건국대통령 이승만 장로 편 - 무조건 무상 몰수, 무상 분배, 기만적인 북한의 토지개혁
[[제1539호]  2017년 2월  25일]

1946년은 남북한 모두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넌 시점이었다. 신탁 통치를 주장한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결정에 대하여 북한 공산당은 열렬한 지지를 표명했다. 신탁통치 찬성지지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김일성은 모스크바 협정을 북조선에서만이라도 먼저 실시하자고 주장했다.

탁치 운동은 반탁에 대한 공격을 동반했다. 신탁통치에 반대하는 이들은 친일파·민족반역자로 규탄 당했다. 북한의 모든 정당, 사회단체에서 신탁통치 반대인사들을 숙청했다. 북한의 민족주의자 조만식(曺晩植)은 반대 의사를 표명하였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정치행위가 되고 말았다. 소련과 김일성은 19461월 조만식을 감금했고, 그 이후의 소식은 알려지지 않았다.

형식적으로 손을 잡았던 민족주의자들을 숙청해 버린 후, 19462월 소련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장은 김일성, 부위원장은 김두봉이었다. “임시위원회라는 이름을 붙여지만, 그것은 사실상 정부였다. 북한의 공식 역사서인 현대 조선 력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의 수립으로서 우리 인민은 그토록 오랜 세월을 두고 념원하던 진정한 인민정권을 가지게 되었으며 혁명의 강력한 무기를 틀어쥐게 되었다. 이때로부터 인민 대중은 사회의 떳떳한 주인으로서의 자주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자연과 사회를 변혁하기 위한 창조적인 투쟁을 결정적으로 벌여나갈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또 한 번 말과 실체가 다른 그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임시위원회라고 이름을 붙여서 앞으로는 마치 정부가 아닌 것처럼 가장을 해놓고 뒤로는 혁명의 강력한 무기를 틀어쥐고있다. 김일성 자신도 임시 위원회가 정부임을 인정했다. 그는 1946815북조선임시인민 위원회는 전체 인민의 의사와 이익을 대표하는 북조선의 중앙주권기관이라고 찬양했다. 임시인민위원회는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북한의 토지개혁은 획일적이었다. 농가(農家)마다 가족 숫자가 다르고 토지의 비옥도가 다르며, 위치에도 차이가 있다. 식구가 적은 집이 있고 많은 집이 있으며, 비옥한 땅이 있고 척박한 땅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모든 차이점들을 무시하고 획일적으로 땅을 나누어 주었다.

이는 소련의 경우와 유사하다. 소련의 토지개혁 사례 가운데 토지를 무조건 폭 1미터 안팎으로 잘라준 기록이 있다. 그러다보니 한 사람은 가진 토지가 한곳에 모여 있지 않고 흩어져있게 되었다. 농민들은 폭 1미터의 한 부분에서 농사를 짓고, 다른 구역으로 가서 또 짓고, 또 다른 지역으로 가야 했다. 정말 무지한, 공산당식 방법이다.

토지 수확량을 거두어가는 방법 또한 무지막지했다. 수확고의 25%를 거두어 갔는데, 실제 수확량이 아니라 예정 수확량의 25%였다. 세금은 돈을 번 다음에 내는 것이 상식이다. 앞으로 돈을 얼마만큼 벌 것이라고 국가에서 예상액을 정해주고 미리 세금을 매긴다는 것은 세금이 아니라 착취이다. 북한의 토지개혁은 일종의 기만이었다. 무리하게 획일적으로 강행되었고 집단 농장으로 가는 단계적 조치에 불과했다. 결국 1958년 집단 농장화가 이루어졌다. 모든 토지가 국가 소유가 되고 국민들은 국가의 농노(農奴)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사유 재산제를 부정하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농민들의 토지 소유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상 몰수, 무상 분배의 구호를 내걸었지만, 무상 분배는 없었고 무상 몰수만 있었을 뿐이다. 남로당 총책을 지낸 국내파 공산주의자 박갑동의 증언이다.

이북에서 토지개혁은 무상 몰수, 무상 분배로 지주와 자영농, 영세 소농까지 전부 없애버렸어요. 이런 일은 동구라파의 폴란드나 체코에서도 없었던 일이에요. 그런데 북한 김일성 집단은 이런 것을 하나도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몰수했어요. 그것은 그 사람이 국내에서는 한반도 항일(抗日)을 위해서 싸운 적이 없고, 국내 동포들에 대한 애정이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에요. 해방 직후에는 전국 재산의 8할 이상이 일본인 소유의 재산이기 때문에 국유화되어 있었고, 대지주라고 해야 극소수에 불과한데, 공산주의자들은 중농 이하의 영세 소농에 이르기까지 무상 몰수에 의한 무상 분배를 들고나오지 않았습니까? 무조건 무상 몰수, 무상 분배해서 집단 농장화 하니까, 물질적, 정신적 인센티브가 없어져 생산력이 격감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주의국가에서는 식량 부족 사태가 생기고, 토지개혁이 다 실패로 끝나지 않았습니까?”

박갑동은 공산주의가 몰락하게 되는 과정을 지적한다. 무자비한 토지개혁이 집단 농장으로 이어져 생산력 격감을 낳은 것이 공산권 몰락의 주요한 요인이었다. 이것이 실체이다. 그러나 소련과 북한은 대대적으로 토지개혁의 성공을 선전했다. 폭력적인 토지개혁으로 수탈당한 북한의 지주들은 대거 월남(越南)했다. 토지개혁과 함께 산업 시설에 대한 국유화(國有化)가 단행되었다. 1946주요 산업 국유화 명령에 따라 전 사업의 90%에 해당하는 1032개 공장, 기업, 문화 기관이 공산당에게 접수되었다.

토지개혁이나 국유화는 웬만한 정권이면 함부로 실시하게 어려운 조치이다. 국민의 재산에 손을 대야하기에 강력한 반발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북한처럼 전 국토에 대한 무상 몰수, 산업 시설의 90%에 대한 국유화 같이 엄청난 조치는 막강한 파워를 가진 정권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 일을 단행한 정권이 임시인민위원회라는 이름을 붙였으니, 정말 앞뒤가 안 맞는다. 북한 군대도 임시인민위원회 산하로 창설되었다.

분단 정권 수립을 위한 스탈린의 지령, 38선의 분단선화, 반공 민족주의자들의 제거, 정권 수립, 토지 개혁과 국유화에 이르기까지, 소련의 정책은 일관성 있게 속도전으로 추진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남한에서는 미군정은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남한 정국에서는 갈등만 증폭되고 있었다. 당시 미국 정부는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에 대한 합의는 물론 심의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것은 미국이 한반도를 국제 정세, 특히 중국 대륙의 상황에 따라 정책이 바뀔 수도 있는 지역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의 세계정세도 그렇거니와 특히 중국의 정세는 너무나 유동적이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일본과 달리 한국은 광대한 대륙의 일부였다.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는 중국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내전이 치열하게 계속되고 있었고 그 앞길이 투명하지 않았다.

이호 목사

<신안산대 겸임교수거룩한 대한민국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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