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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건국대통령 이승만 장로 편 - 공산 극렬분자들을 “민족반역자요 파괴자”로 불렀던 이승만
[[제1538호]  2017년 2월  18일]

당시 소련과 공산주의의 인기는 세계적으로 절정이었다. 소련군은 2차 대전 중 나치 독일군을 상대로 영웅적으로 싸웠다. 특히 1943년 소련군이 스탈린그라드 결전에서 독일군을 섬멸한 것은 전세(轉世)를 역전시킨 쾌거로서 세계인들의 가슴을 뛰게 하였다. 소련은 2천만 명이 죽는 엄청난 희생을 치러가면서 미치광이 히틀러를 꺾은 전승국(戰勝國)이었다. 미국의 국무부, 재무부 등의 요직에는 무계급 만민평등 공산주의 선전과 영웅적인 투쟁에 매료되어 자발적으로 소련의 첩자가 된 고위 관료들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승만은 공산당 극렬분자들을 반역자요 파괴자라고 정확히 규정하였다. 소련을 조국으로 생각하는 반역, 파괴, 공산 세력은 국가 건설의 길을 함께 갈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이 연설은 건국(建國) 지도자에 의하여 이루어진, 2차 대전 이후 공산당에 대한 세계 최초의 정면 대결 선언이었다. 소련에 대한 대결 노선을 천명한 미국의 트루먼 독트린은 그로부터 2년 후였다. 전 세계의 공산주의자들은 소련을 프롤레타리아의 조국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한반도의 김일성, 박헌영 역시 스탈린의 지령에 절대 복종하고 있었다. 이승만은 그 점을 지목하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분자들이 러시아를 저희 조국으로 부른다니, 과연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요구하는 바는 이 사람들이 한국에서 떠나서 저희 조국에 들어가서 저희 나라를 충성스럽게 섬기라고 하고 싶다. 우리는 우리나라를 찾아서 완전히 우리 것을 만들어 가지고 잘하나 못하나 우리의 원하는 대로 만들어 가지고 살려는 것을 이 사람들이 한국 사람의 형용(形容)을 하고 와서 우리 것을 빼앗아서 저희 조국에 갖다 붙이려는 것은 우리가 결코 허락지 않는 것이니, 우리 삼천만 남녀가 다 목숨을 내어놓고 싸울 결심이다.”

이승만은 남한과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이 스탈린의 졸개이며 매국노라는 점을 직설적으로 폭로했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을, “한국 사람의 형용(形容)을 하고 와서 우리 것을 빼앗아서 소련에 갖다 바치려는민족 반역자로 묘사하였다. 모습은 한국인이지만, 실상은 소련을 위해서 복무하는 간첩들이란 지적이었다. 이승만은 이 연설에서 공산주의와 싸우는 방법도 제시하였다.

먼저 그 사람들을 회유(誨諭)해서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내용을 모르고 따라다니는 무리를 권유하여 돌아서게만 되면 함께 나아갈 것이오.” 설득이 되면 우리 편이다. 하지만 설득이 안되는 자들이 문제다. 그들에 대해서 이승만은 비정하게 말했다.

친부형(親父兄), 친자질(親子姪)이라도 원수로 대우해야 한다. 대의를 위해서는 애증(愛憎)과 친소(親疎)를 돌아볼 수 없는 것이다...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건설자와 파괴자는 협동이 못되는 법이다. 건설자가 변경되든지 파괴자가 회개되든지 해서 같은 목적을 가지기 전에는 완전한 활동이 못 된다.” 이승만은 공산당은 절대로 협동할 수 없는 원수이며 파괴자라고 주장했다. 이승만의 위대한 연설은 이렇게 끝난다.

이 큰 문제를 우리 손으로 해결치 못하면 다른 해방국들과 같이 나라가 두 조각으로 나뉘어져서 동족상쟁의 화()를 면치 못하고, 따라서 우리가 결국은 다시 남의 노예 노릇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경향 각처에 있는 모든 애국 애족하는 동포의 합심 합력으로 민주정체하(民主政體下)에서 국가를 건설하야 만년 무궁한 자유 복락의 기초를 세우기로 결심하자.”

당시만 해도 남한에서 공산당은 불법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승만의 강경한 연설은 조갑제의 표현처럼 “70세 노투사(老鬪士)의 위대한 선제 공격이었다.

제대로 얻어맞은 조선 공산당의 박헌영은 세계 민주주의 전선의 분열을 책동하는 파시스트 이승만 박사의 성명을 반박함이라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표현은 극렬했지만 효과는 신통치 않았다. 박헌영 등 공산 세력이 주도한 인민공화국이 이승만을 주석으로 초대한 것이 불과 세달 전인데, 갑자기 파시스트라고 공격하니 앞뒤가 안 맞았다.

이승만에게서 보여지는 천재성 중의 하나는 타이밍이었다. 공산당에게 기습 공격을 가한 것이 1219일이다. 박헌영이 반박하면서 남한 정국은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입장을 놓고 찬반양론이 뜨거워졌다. 논쟁이 한창 달아오르던 1226일 모스크바 삼상회의인의 결과인 신탁통치안이 발표되었다.

한국인들에게 자치(自治) 능력이 없으므로 강대국들이 5년 기한의 신탁통치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은 우리 민족에 대한 모독이었다. 5천년 독립국이었던 우리가 자치를 못한다는 지적은 화약고와 같던 민심에 불을 붙였다. 즉각 김구와 이승만이 주도하는 반탁(反託)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공산당도 처음에는 반탁의 흐름에 밀려가는 듯했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박헌영의 조선 공산당은 친탁인지 반탁인지 태도를 결정하지 못했다. 소련의 지령이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헌영은 서울 주재 소련 영사관을 찾아가 지침을 받으려 했으나, 영사관 측은 본국으로부터 훈령을 받지 못하였다고 했다.

결국 박헌영은 1228일 밤 비밀리에 38선을 넘어 평양으로 갔다. 그곳에서 소련군 민정(民政) 사령관 로마넨코가 지침을 하달했다. 신탁통치를 결의한 모스크바 협정을 지지하라는 것이었다.

지령을 받은 박헌영은 194612일 서울로 돌아와 신탁통치 지지성명을 발표하였다. 그것은 남한 민중에게 제대로 된 학습 효과가 되었다. 불과 1주일 전에 이승만이 공산당은 사대주의자에 매국노라고 비판했다. 그 말이 귓전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강대국이 조국을 다스린다는데 공산당이 찬성하고 나섰다.

이승만의 말이 맞다는 것을 공산주의자들이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이승만은 용기 있게 진실을 말함으로써 해방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해방에서 건국까지의 3년 동안, 이승만과 다른 지도자들의 중요한 차이점이 바로 이것이다. 이승만은 외부 세력이 만들어 놓은 흐름을 관망하다가 적당하게 올라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적절한 타이밍의 선제적 행동으로 스스로 흐름을 만들어나갔다. 본인이 흐름을 만들고 본인이 주도해 나가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것이 그가 대권(大權)을 차지한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호 목사

<신안산대 겸임교수 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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