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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건국대통령 이승만 장로 편 - 日 진주만 공격 예언, 美 국방부의 부정적 평가도 바꿔
[[제1525호]  2016년 11월  5일]

‘Japan Inside Out’이 출판된 것은 1941년 여름이었다. 그런데 그 해가 끝나가던 12월에 갑자기 날개 돋친 듯이 책이 팔렸다. 미국 내 서점에서 매진되었고 영국에서도 출판되었다. 127일에, 이승만의 예언대로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함으로써 태평양전쟁이 발발했기 때문이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127일을 영원한 치욕의 날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미국이 수십 년에 걸친 이승만의 충고를 무시한 대가였다.

이승만은 예언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전까지 그는 미국 국무부에 독립에 미친 늙은이로 알려져 있었다. 책이 출간되고 전쟁이 터지면서, 특히 미국 군부(軍部)에서 이승만을 호의적으로 보게 되었다. 이승만에 대한 국방부의 긍정적인 시각은 국무부의 부정적인 평가를 상쇄해 주며, 이후 이승만과 한국의 진로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국방부는 이승만과 협조적인 관계를 구축했다. 그 첫 열매가 한국인들의 OSS 참여였다.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는 대외첩보공작기관이다. 훗날 그 유명한 CIA로 발전한 조직이다. 주요 임무는 포로의 심문과 적의 문서 번역, 적의 방송 및 무전 청취 등을 통한 자료 수집, 적의 점령 지역이나 후방에서 현지 주민들을 중심으로 유격대를 조직해서 적의 시설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첩보 영화에 자주 나오는 역할이다. 1942124OSS 공작을 위한 한국인 고용 계획이 승인되었다. 평소 이승만과 친분이 있던 OSS 책임자 프레스턴 굿펠로우(Prestion Goodfellow) 대령은 구미위원부의 추천을 받아 일본어와 한국어에 능통한 한국 청년들을 훈련시켰다.

이때 OSS 대원이 된 청년들 중에는 장기영, 이순용, 정운수, 유일한, 김길준 등 장차 대한민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이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었다. 독립 운동기 외교의 또 하나의 성과는 적성 국민 명단에서 한국민을 제외한 것이다. 19411229일 미국 정부는 적국 외국인 단속령을 내렸다. 적국민(敵國民)으로 간주된 이들은 모든 종류의 무전기, 단파 라디오, 카메라 소지를 금지 당했다. 가장 큰 피해자들은 미국에 있던 일본인 1세와 2세들이었다. 미국 정부는 일본계 미국인 12만 명을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해 캘리포니아 등 10개 지역의 사막에 만든 강제 수용소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이 문제가 되었다. 공식적으로는 일본 국적을 가지고 있었기에, 한국인들도 일본인으로 취급당할 수 있었다. 이에 이승만과 구미위원부는 미국 법무장관 비들(Biddle)과 육군 장관 스팀슨(stimson)을 설득했다. 미국 정부가 우리 교포들을 일본인과 구별하여 우호적 외국인으로 취급하도록 했다. 이승만의 외교는 성공을 거두었다. 194229일 적성국가 외국인에 가해진 규제의 특별면제대상을 규정한 성명이 발표되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40년의 외국인 등록법에 의해 등록된 오스트리아인, 오스트리아헝가리인, 한국인으로 자의로 독일이나 이탈리아, 일본의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사람들은 카메라나 라디오, 혹은 적성국가 외국인에게 소지가 금지된 품목을 신고할 필요가 없으며, 여행과 거주의 제한도 받지 않고 특별한 신분증을 지니지 않아도 되며, 독일, 이탈리아, 일본 국적의 외국인에게 적용되는 여타 제한이나 규제를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 이 면제의 목적은 무력 침략으로 자신들의 조국을 짓밟은 외국 정부에 충성하지 않은 수많은 충성스러운 오스트리아인, 오스트리아헝가리인, 한국인들을 규제에서 제외하기 위함이다.”

미국 법무장관의 성명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오랫동안 미국은 한국의 독립 문제를 일본의 내정에 관한 것으로 취급했다. 한국을 일본의 일부로 본 것이다. 미국은 남의 나라 내정에 간섭할 수는 없다는 이유로 한국의 독립 요구를 외면해 왔다. 한국인들의 국적은 일본으로 취급당했다. 일본 국적자로 인정되기를 거부한 이승만은 무국적자로 활동해야 했다. 해외여행을 나갈 때마다 국적이 없어서 곤란을 겪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적성국가를 지정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한국을 일본으로부터 명백히 분리했다. 일본은 한국인들의 조국이 아니라, 무력으로 짓밟은 외국 정부에 불과하다고 분명히 법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이는 이승만과 동지들이 미국으로부터 얻어내기 위해 오랜 세월 투쟁해 온 것이었다. 법무장관의 성명은 일본에서 분리된 한국의 존재를 확실하게 인정하고 있었다.

 

임시정부 승인 외교

태평양전쟁이 터지자, 이승만이 제일 먼저 취한 조치는 임시정부 승인 요청이었다. 이승만은 2차 대전이 끝난 뒤에 소련이 한반도를 점령하여 공산화시킬 것을 염려했다. 그전에 미국의 승인을 받은 우리 정부가 있어야 소련의 야욕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승만의 예측은 몇 수 앞을 내다본 고수의 시각이었다. 훗날 이것 역시도 옳았음이 판명되었다. 하지만 계속 예상이 맞아들어 가는데도, 줄기차게 냉대 받고 무시당한 이승만의 이력은 이번에도 또 한번 반복되었다.

194212, 이승만은 국무부를 방문하여 임시정부의 승일을 요청했다. 소련은 오래전부터 한반도의 부동항(不凍港)을 얻으려고 노력해왔기 때문에 미국이 먼저 손을 써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소련에 앞서 승인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지 않으면 일본이 패망한 뒤 소련이 반드시 끼어들어 한반도를 강점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국무부의 실무 책임자 앨저 히스(Alger Hiss)는 임시정부 승인을 거절했다.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면 소련을 자극하게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소련에 대한 이승만의 지적을 듣고 나서 그는 오히려 화를 냈다. 불쾌한 표정으로 미국의 동맹국인 소련을 비난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히스를 만난 후, 이승만은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미국 관료가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공신주의자들의 영향력이 국무부 심장부에까지 침투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앨저 히스는 계속해서 소련을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다. 히스의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난 것은 1995년이었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미국에서 소련으로 발송된 전문을 해독한 베로나(verona) 프로젝트 결과, Ales라는 암호를 사용한 스파이가 소련에 보낸 보고 파일이 발견되었다. Ales의 움직임을 추적해 보니, 얄타 회담 이후 소련을 방문한 것이 확인되었다. 그 간첩의 알리바이는 앨저 히스의 동선(動線)과 일치했다.

이호 목사 <신안산대 겸임교수 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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