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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통령 이승만 장로9 - ‘복당동지’(福堂同志) 결성
[[제1493호]  2016년 2월  20일]

1899년 겨울, 영혼을 묶었던 사슬에서 풀려난 이승만은 그해 여름인 7월에 팔다리와 목을 옥죄었던 사슬에서도 풀려났다. 7월 11일의 선고에서 무기형으로 감형된 것이다. 사형이 집행될 날을 기다리며 신앙에 매달리고 있던 그에게 감형은 하나님이 베푸신 기적이었다. 무기수가 되면서부터 이승만은 칼과 족쇄, 수갑으로부터 벗어나서 보다 자유로운 수감 생활을 할 수 있었다.

1899년 12월에는 두 차례 감형이 더해져서 징역은 10년으로 단축되었다. 거듭된 단축은 선교사들의 노력, 왕족이라는 신분에서 오는 특혜, 이승만 가족들의 필사적인 구명 활동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1900년 전후로 한성 감옥에는 350명의 죄수가 갇혀 있었다. 죄목으로 분류하면 사기범, 절도범, 흉악범, 정치범 등 다양했다. 특이하게도 정치범들은 대부분 같은 성향이었다. 갑오경장이 실패한 뒤에 일본에 망명하여 고종 황제 폐위, 국체 개혁을 추진했던 박영효, 유길준 계열의 역적들이거나 정부 시책에 반대했던 인물들이었다. 주로 개화파 계열에 속했던 관료, 군인, 경찰관, 언론인, 학생회 회장, 독립협회 회원들이었다.

다시 말해서 서구 지향적인 개혁파 애국자들이었다. 그들 중에서 이승만이 기독교 개종의 첫 열매였다. 이승만은 감옥에 정기적으로 찾아와 성경공부를 인도한 아펜젤러, 언더우드, 벙커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가며 전도에 열을 올렸다.

이승만에게는 뛰어난 설득력과 사람들을 감화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일찍부터 연설과 리더십에 두각을 나타냈고 평생 리더로 살아갔다. 하나님은 한성 감옥에서 그의 감화력을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열정적으로 전도한 이승만은 감옥에서 40여 명의 개종자를 얻었다.

또 한 번 ‘최초’의 수식어가 붙었으니, 한국 최초의 전도왕이다. 그 당시 한반도에 와있던 어느 선교사도 그만큼의 한국인들을 개종시킨 사례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 40여 명이 개혁파 지식인이요 훗날의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건국 세력이 되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한 일이다.

이승만과 회심한 지식인들은 1902년 12월 28일, 감옥에서 예배를 시작했다. 특이하게도 죄수들의 예배에 간수들도 참여했다. 이승만의 영향력이 간수들에게까지 미친 것이다. 지옥 같던 감옥이었지만, 예배를 마친 그들의 영혼에는 감격이 솟아올랐다.

그들은 감옥을 ‘복당(福堂)’이라고 불렀다. 형벌과 치욕이 내려진 생지옥이 하나님을 만나 예배하는 기쁨으로 가득 찬, 축복의 집이 된 것이다. 죄수 이원긍의 아들 이능화(李能和)는 감격적으로 표현했다. “지옥과 같은 감옥이 천당으로 변했다.”

복당 동지들은 성경읽기에 몰두했다. 이승만의 기록이다.

“이 이야기의 가장 고무적인 부분은 예수가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저버린데 있다. 어두운 감방 안에서 일부 죄수들은 죽음의 시간을 고통스럽게 기다리고 있었고, 어떤 자들은 교수대로 끌려갔고, 또 다른 이들은 마치 사탄 자신이 영원히 옥좌에서 군림하고 있는 듯, 희망의 빛줄기라고는 하나도 없이 끝없이 고통 받고 있었다. 그런 시간과 그런 상황에서 우리 각자는 예수가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고통을 받았다고 믿었고, 예수가 당한 무고와 불의는 너무나 현실적이고 참된 것이어서 우리 각자가 이상스럽게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하였다.”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레가 회심하던 날, 로마서의 말씀을 들으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일기에 썼다. 훗날 감리교인이 된 이승만도 같은 기록을 남겼다.

시대는 달랐고 상황도 달랐으며 인종과 배경도 달랐지만, 그들을 뜨겁게 만든 것은 동일한 복음이었다. 고난 받고 피 묻은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서, 시대를 변혁하는 성령의 뜨거움이 역사의 주인공들에게 임한 것이다.

기독교인이 된 이승만과 동료들은 서로를 ‘복당동지(福堂同志)’라고 불렀다. 복당동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엄청난 이름들이다.

• 이승만: 박영효 대통령 옹립 사건으로 투옥, 훗날 독립운동가, 건국대통령이 되었다.

• 신흥우: 이승만의 도동 서당, 배재학당 동료, 박영효와 관련되어 투옥, 훗날 정치가로 활약했다.

•이상재:의정부 참찬을 지냈고 유길준과 관련되어 투옥, 훗날 YMCA 운동에 전념했던 위대한 기독교 교육자였다. 한국의 톨스토이로 존경받았다.

• 이원긍: 조선 선비의 최고 명예인 대제학 출신, 옥중에서 처형당했다.

• 유성준: 내무 협판(차관)을 지낸 유길준의 동생. 훗날 보성전문 교장, 물산장려회 이사장으로 활약했다.

• 이동녕: 진사시에 급제한 재사(才士). 훗날 임시정부 요인으로 활약한 독립운동가이다.

• 이종일: 제국신문 사장으로 훗날 3.1운동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분 이었다.

• 이준: 한성 재판소 검사보를 지냈으며 훗날 헤이그 밀사로 파견되었다.

• 안국선: 신소설 ‘금수회의록’의 저자로 애국 계몽 운동가로 활약했다.

• 양의종: 협성회 간부와 배재학당, 언론 활동에 이승만과 함께 활약했다.

• 정순만: 훗날 시베리아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벌였다.

• 박용만: 미국과 하와이에서 무장 투쟁에 의한 독립운동을 추진했다.

• 김정식: 경무 국장 출신으로 후에 동경YMCA의 창설자가 되었다.

이승만의 전도를 받아서 회심한 이상재(李商在)는 자신의 기독교인이 된 동기를 훗날, 다음과 같이 밝혔다.

“걷잡을 수 없는 나라의 비운이 드디어 창상(滄桑)의 변-나라가 몰락할 임박에 처했음-까지 몰아왔음을 몸소 겪으면서 그래도 낙심하지 않고 나라 구원의 길을 찾아보려는 일념(一念)이 기독교의 믿음을 갖게 한 것이며, 또 나라의 장래를 기약하기 위해서는 낡은 세대를 제쳐놓고 젊은 세대를 길러야 되겠다는 또 하나의 믿음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글에서 뚜렷이 발견되는 것은 기독교의 애국심이다. 개인의 구원만이 아니라 ‘나라 구원의 길을 찾으려는 일념’이 기독교로 그의 발길을 이끌어간 것이다. 다른 옥중 동료들도 비슷했다.

이호 목사 <신안산대 겸임교수 • 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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