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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8호]  2020년 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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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돌아온 탕자 정원재 장로 (24)
[[제1672호]  2020년 1월  11일]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금수강산을 잘 가꾸고 관리해서 아름다운 동산으로 만들어야 한다그래서 원재는 어디를 가나 땅을 잘 개간하고 가꾸어서 옥토를 만드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홍수가 나서 옥토가 자갈밭이 되면 둑을 쌓고 자갈을 골라내며 흙을 돋우어 거름을 해서 다시 옥토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가뭄에 물을 대기 위해 관수사업을 했고 또 땅을 파서 샘물이 나게 하고 그 물을 공급해서 농사도 잘 짓게 하였다개척자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토박한 땅을 비옥한 땅으로 만들고 한그루의 나무라도 심는 것이 국토를 사랑하는 것이요나아가서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그리고 땅을 경작하는 농사야말로 신앙생활하는 데 가장 좋은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원재는 하나님께서 한민족에게 삼천리금수강산을 기업으로 주신 것은 열심히 일하라는 명령으로 알고 일터에 나갈 때마다 찬송을 열심히 불렀다

원재는 하와이에서 몇 년간 있는 가운데 예수를 믿어 새사람 되고 구원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육신적으로 생활이 탈바꿈한 모습을 나타냈다신앙이 곧 생활로 나타난 것이다구체적으로 말하면8년 동안의 외국생활에서 경험한 문화생활에 견주어 가족에게 의식주 생활에 불리한 점을 지적하면서 개량할 것을 주장했다

먼저 식생활부터 고치라고 했다한국인들은 먹는 음식이 틀에 박힌 메뉴였다밥에 김치된장찌개고추장 등이 전부이고 특별한 음식으로서 생선이나 미역국 정도였다이것이 매 끼니마다 거의 반복되는 것이다원재는1주일분의 식단을 짜서 아내나 며느리를 주었다경제문제도 있고 재료의 공급에 한계가 있으니까 농촌 가정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음식을 준비하여 먹도록 하였다아침은 보통 밥이지만저녁은 다양한 음식 예를 들면 콩죽팥죽국수 등이고 어려움 중에도 한 달에 두어번 사골이나 소 내장 그리고 닭이나 돼지고기를 요리해서 먹도록 했다서양식으로 식단을 다양하게 바꾸는 것은 육신 건강에 중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의복은 간소하게 입도록 권장했고흰옷보다는 염색한 옷을 만들어 입도록 했다흰옷은 쉽게 더러워져서 비경제적이요비효율적으로 본 것이다

또한 청결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하와이에서 일과 후에는 반드시 샤워하던 습관을 생각하면서 어디선지 목욕통을 구입해서 집 뒤꼍에 목욕실을 설치하고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일주일에 한 번은 전 식구가 목욕을 하도록 했다또한 불결함은 질병의 원인이 되는 것이니 집안 청소를 하라고 권장했다

그리고 원재는 기독교 계통에서 출판되는 잡지나 신앙 서적을 구입해 보았고 일간 신문을 반드시 구독하였다그리고 중요한 기사나 사진은 잘라서 스크랩을 해 놨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죽어 묻힐 땅을 미리 얘기해 두었었다그가 수명을 다해 죽은 후에 이삭과 이스마엘이 막벨라 굴에 장사했는데 그곳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 산 밭이었다원재도 수명이 다해 감에 죽어 묻힐 땅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죽산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이승화 집사님에게 그의 종중산인 죽주산성 기슭죽산교회가 바라보이는 남서쪽 끝자락을 산소로 사용하도록 양해를 구해 두었다

원재는 평소에 한국 역사와 전통문화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죽산지역에 살면서 유적이나 문화재를 둘러보고 죽산이 역사가 오래되고 유서가 깊은 곳이구나 생각하면서 감탄하기도 했다기독교인의 신앙이나 교리적 입장에서는 한국인의 세시풍습이나 미신적 행위에서 타파하고 개혁할 점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전통 문화나 종교에 대해서 깊은 이해를 하려고 했다그래서 죽산 근교에 있는 죽주산성과 송문주 장군매산리 미륵불사찰로는 칠장사,봉업사지5층 석탑죽산리3층석탑 등을 돌아보았다이 유적들에 대한 자세한 내력은 잘 모르나 다만 외관에 나타난 것을 감상했다.

이 유적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안성문화원향토사연구회원 및 경기도문화관광해설사 윤민용이 제공한 것인데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자 한다

죽산은 역사가 깊은 곳이었다기록상으로는 고구려20대 장수왕 때부터 개차산군이라 불렸고 신라 경덕왕16(757)에는 개산군이 되었다

그 후 현종9(1018)에는 광주의 임내로 된 적이 없고 명종2(1172)에는 감무를 두어 다스렸다

그 뒤 여러 번 변천하다가 조선조 대에 이르러 지금과 같이 죽산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태종13(1413)에 죽주 지명이 죽산으로 바뀌며 죽산현이 설치되었고 고려시대부터 충청도 관할이었던 죽산이 세종16(1434)에 경기도로 편입되었다

죽산은 삼국시대부터 지방통치의 중심으로 이어 내려오다가 조선조에 이르러서는 선조17(1584)에는 현으로 격하되기도 하였다얼마 후 선조29(1596)에 다시 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고종32(1895)에 군으로 격하되었으며1914년 일제강점 당시 행정구역 개편으로 면으로 축소되었다

지금의 일죽면 죽삼면 삼죽면이 죽산군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죽산도호부로서1543년부터1895년 까지 약294년간 경기 남부의 중심지가 되었다

도호부사란 현대 민주국가에 있어서 삼권을 장악하고 목민을 이끌어 다스리던 관리였다인조 때에는 수어후영을 여주에서 죽산으로 옮기고 죽산도호부사는 수어후영장겸 토포사를 겸하게 되었고 군병과 식읍을 거느리어 관장하게 되었으며 부사도는 죽산안성양성양지여주음죽 등6개 고을에서 죄인을 죽산으로 송치하여 심문 판결하였고 사형집행까지 하였다이로 인하여 죄 없는 사람도 죽산 관아 앞을 지나기를 꺼렸다고 한다


정행업 목사

  • 전 대전신학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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