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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돌아온 탕자 정원재 장로(22)
[[제1669호]  2019년 12월  21일]


해방과 독립


1941년 12월 8일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했을 때 원재는 이제는 일본이 자기 무덤을 파는구나 생각하고 일본의 패망을 내다봤다

원재는 신설감리교회 일을 접게 되었다일제 말기 교회에 대한 탄압은 더욱 심해져서 교세도 약해지고 전도하는 일은 크게 위축되었다마침 강원도 회양군 신안면 정수골이라는 지역에 수리조합 책임자가 되어 그곳으로 가서 몇 년 동안 일하게 되었고 신안리라는 곳이 집에서30리인데 그곳 교회에 나가서 예배도 드리고 교회 일을 도왔다

그리고 해방되기 바로 전 해인1944126일 안성군 이죽면 너런리로 이사를 했다가 다시 매산리498번지 그곳에서 해방을 맞이하였다

드디어1945815일 일본이 미국에 무조건 항복함으로 태평양전쟁아니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난 것이다이때 우리 국민들은 목청을 높여 자유롭게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이제는 어두운 세상이 끝나고 밝은 세상이 온 것이다

원재는 모든 억압과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는 날이 드디어 왔다고 외쳤다.자유롭게 하나님께 예배하며 전도하며 이 땅에 하나님이 원하는 나라를 모두 함께 건설해야 한다고 안성군 이죽면 죽산교회 강단에서 외쳤다

해방 후에 한국 정세는 매우 혼란스럽고 복잡하였다이때에 나타난 인물이 이승만 박사였다. 19451016일 오후5시 서울 여의도 비행장에 내린 백발의 노신사는33년 동안 해외에서 조국의 독립운동을 하던 이승만이었다

원재는 하와이를 떠난 후에 이승만 씨가 그곳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었고 그의 인물됨을 잘 아는 터라 이제부터 그가 해방된 조국을 재건할 것을 기대하였다

정국은 점점 혼미해지고 복잡해졌다. 38선을 중심으로 남북이 갈라지고 좌우 이념의 갈등이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였다

원재는1948815일 대한민국이 독립을 선언하여 자유민주주의로 탄생한 것을 누구보다도 기뻐하였다그러나 뜻하지 않게도1950625일 북한공산당의 남침으로 인해서 동족상잔의 비극과 국토가 초토화되는 참상을 보고 원재는 가슴이 아팠다이러한 때에 우리 민족은 과거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살 수 있으며이 시련과 고통이 하나님의 사랑의 매로 알고이 고난의 역사를 통해 우리 민족은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말을 기회있을 때마다 했다

원재는 해방 후 이 땅에는 자유와 평화 그리고 통일된 대한미국이 건국되어 세계 만방의 독립된 나라로 굳게 서 있을 것을 기대했지만 북한 공산주의 집단에 의해서 남한이 초토화되고 공산당 치하에 놓이게 되자 참담함을 금할 길 없었다

인민군이 낮에는 비행기 공습을 피하여 동리에 들어와 각 집에 은거하고 밤에는 남쪽을 향해 탱크를 앞세우고 계속 남진하고 있지 아니한가지방에 있던 공산주의자들이 자기들 세상을 만났다고 기고만장 하여 면소와 지소를 장악하였다그리고 밤에는 그들의 애국가와 김일성 장군의 찬양노래를 가르치며 공산주의를 주입시키는 선무운동이 전개되는데 불참하면 반동분자로 매도하는 분위기였다

공산치하4개여월 동안은 참으로 공포의 분위기였다유엔군의 참전으로 북한 공산군을 격퇴할 것을 믿었고915일 맥아더 장군의 지혜로운 인천 상륙 작전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전세는 바뀌게 되고 인민군 패잔병들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때 미처 후퇴하지 못하고 지방에서 활동하던 공산주의자들이 지방의 유력한 유지들을 검거하여 학살을 감행하고 죽산성지 이진터에 매장을 했다

원재에게는 죽을 고비가 찾아왔다그가 예수를 믿고 지주라는 이유로 어느 날 밤에 찾아 온 청년 두 사람에 의해 연행되어 갔다밤새도록 구금되어 있다가 새벽이 되었는데 원재가 전도해서 예수 믿은 청년이 원재를 알아보고 어서 피하라고 해서 구사일생으로 화를 면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며칠 후 국군과 유엔군이 완전히 진격하여 다시 자유의 천지가 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이38선을 돌파하고 압록강까지 진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는 이 땅에 통일이 오겠구나 생각했다그러나 중공군의 침략으로 후퇴하고 소위1.4후퇴로 인해서 한강이남 용인과 백암까지 다시 북한 공산군의 중공군이 장악하게 되었다당시 죽산과 매산리는 육군 모사단이 주둔하여 최전선을 이루었다

원재는 아무래도 멀리 피난을 가야겠구나 생각하고 장선리 산골짝으로 처소를 옮기어 피난하였고 다시 국군이 서울을 탈환하게 되자 매산리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매산리 집은 큰 신작로에 있었다그 길로 인민군이 남진하기도 하고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하기도 했다서울로부터 피란 행렬이 줄을 지어 내려오는가 하면 수복한 후에는 피란갔던 자들이 돌아오는 행렬로 이어졌다이러한 일들이 반복되었다큰 길에서 멀리 떨어진 깊숙한 동리에 살았다면 이 전쟁의 아픔을 덜 느낄 것 같았다

원재가 하루는 집을 떠나있는 동안 어질러졌던 가구를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밖에 나갔던 며느리가 황급히 뛰어들어오는 것이었다그 뒤를 따라 까만 피부의 미군 병사가 뛰어들면서색씨색씨!” 하고 외치며 갑자기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처음에는 놀래서 당황했지만 알고 보니 여자를 찾는 눈치였다그래서 며느리를 뒤꼍으로 피하라고 하고 다가오는 군인을 막아서면서 어눌한 영어로 말했다

“그 여자는 내 며느리다너희들이 이 땅에 와서 공산주의자들을 물리쳐주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그러나 민가에 무단히 침입해서 여자를 찾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라고 타일렀다

이 병사가 돌아간 후 그 다음에 지프차를 타고 온 미군 두 명이 노인을 찾는 것이었다.미국 종군기자들이었다이 농촌에서 영어를 하는 노인이 있다고 보고가 된 모양이었다원재와 미군과의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원재는 하와이에서 귀국한 후 영어를 쓸만한 기회가 없었다언어란 항상 사용하지 않으면 녹이 슬게 되어 있다더구나 세월이 몇십 년이나 지나지 않았는가그래서 잘 표현도 되지 않아서 미군 기자가 하는 말을 분명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미군 기자의 질문은노인이 영어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배웠습니까?” 

“난 하와이 노동이민을 가서8년 만에 돌아왔소.” 

“그럼 현재 직업은 무엇입니까?” 

“농사나 짓고 교회일 좀 봅니다.” 

“미군에 통역할 사람이 없으니 거기서 통역할 의사가 없습니까?” 그 당시에는 영어를 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원재는나는 나이가 많아서 일할 수 없소”라고 말했다. “실례지만 나이가 얼마입니까”라고 해서나는70세요” 하니까그렇습니까인터뷰에 응해줘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하면서 초콜릿을 한 상자 주고 갔다가는 그들에게 다시 한 번한국을 위해 싸워주는 미국에 감사합니다하지만 제발 민폐는 끼치지 말아 주셨으면 고맙겠소”라고 당부를 했다

아군과 적군의 전투는 계속되었다지루하게 밀고 밀리는 전쟁은2년 동안 지속되다가 마침내1953728일 판문점에서 휴전조약을 맺음으로 휴전되었다

 

정행업 목사<전 대전신학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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