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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돌아온 탕자 정원재 장로(1)
[[제1647호]  2019년 6월  29일]


땅을 사랑해 농촌에 땀을 쏟았던 삶


나의 부친 정원재(1883~1955)가 태어난 시기는 오랜 쇄국정치가 무너지고 외세의 물결이 짙게 밀려오던 때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개화의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했지만 동시에 일제의 지배 아래 놓이는 망국의 시기이기도 했다그는 어두운 현실을 탈출하여8년간 하와이 노동이민 생활을 하는 동안 예수를 믿고 새사람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왔다그는 평범한 농부로 농사일을 하면서 신학교를 나왔고 전도사나 장로의 직함을 가지고 변화된 모습으로 살았다일제의 강압적 식민통치 하에서도 믿음을 지켰다. 8.15 해방의 기쁨조국 분단의 아픔, 6.25한국전쟁의 비극의 현장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믿고 바라보면서 복음전파에 전력을 다하였다정원재의 인생 여정은 격동과 개화의 민족사 속에서 복음전파 사역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부친의 전기를 기승전결로 정리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었다물증으로 남은 자료는 서너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중 하나는1905년도에 하와이 이민생활 중 찍은 사진 한 장이다기독교에 입신한 후 양복을 입고 큰 성경책을 들고 찍은 사진이다이 사진은 인천에 있는 한국이민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또 하나는 오인환 교수(연세대학교 사회대학학장대학원장 역임)가 이메일로 보내준 문서인데 거기에는‘Chung, Won Chai 23, married, 13, 2. 1905 Siberia’라고 적혀 있다즉 정원재는23세로 기혼자요, 1905213일에 시베리아호로 이민을 왔다는 뜻이다그리고 이 한 줄의 기록은 한국이민사박물관1층 벽면에 새겨진7,000여 명 이민자 명단 가운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다음은 하와이대학교 한국학 연구소 연구원 이덕희 여사가 이메일로 보내준 자료이다

“정원재 씨는 마우이 섬의 푸우네네 제일농장에서 일하셨습니다. 190910월에 안중근 의거가 일어나자 하와이 동포들이190912월부터19103월까지 재판 경비를 모금하였습니다동포들이25센트부터15불까지 성금하여 총2,921불을 모았습니다이 금액은 지금의6만불에 해당합니다정원재 씨는1(20불 가치)을 성금했습니다이것이 정원재 씨에 관해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입니다당시 월급이18불 내지20불이었고 한 달 평균 생활비가6~9불이었습니다제 생각에는 나머지 돈을 전부 저금했다가 귀국할 때 가져갔을 것입니다왜냐하면 한국에 식구가 있었으니까.”

여기에 더해 생전에 아버님이 어머님에게 들려준 이야기와 우리 형제들에게 해 주신 이야기의 기억을 더듬어 회상해 보았다또한 이민에 관한 서적들을 찾아보거나 하와이 박물관이나 연구소 등을 둘러보며 내용을 구성해 보았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첫째로 부친의 족적을 남기려는 데 있다세상에 내놓을 만한 점은 없지만 방탕했던 한 인간이 만리타국에 가서 예수를 믿고 새사람 되어 귀국했다천로역정에 나오는 기독교도처럼 인간 구원의 아름다운 이야기이다또 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를 생각하게 된다

또 농촌에서 출생하여 농부로 자라면서 땅을 사랑하고 땀을 흘리던 자가 이국 땅에 가서 그곳에서도 땅을 기경하며 땀을 쏟았다그러나 그 땅은 내 땅이 아니었다귀국 후 내 강산내 국토의 소중함을 깨닫고 더욱 나라사랑에 마음을 바쳤다그리고 일생 농부로 땅과 함께 살았다

이 글을 쓰는 두 번째 목적은 개인의 구원사건이 한 민족에 확대 투사되고 반영되어 민족의 개혁과 개화로 이어지고 마침내 민족구원의 역사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이 땅에 복음의 빛이 비췸으로 가난과 질곡의 역사로부터 해방과 자유와 평등의 세계로 변해갔다는 역사를 증언하려는 데 있다

끝으로 이민의 역사는 모험과 개척의 역사이고고난의 여정임을 이야기하고자 한다최초의 이민은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그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하나님의 부르심에 결단하고 고향을 떠났고 낯설고 물선 곳에서 하나님 말씀만 믿고 순종하며 살았다타향살이의 고달픔 중에도 하나님께 단 쌓는 생활을 했고 장막을 옮겨 치는 불안한 삶 중에 오히려 영원한 하늘 본향을 목표삼고 순례의 길을 가는 나그네 삶을 살았다

오늘날 우리 민족은 전 세계에 흩어져 이민생활을 하고 있는 자가 많다이들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인류 구원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글로벌 시대에 온 누리에 복음의 광채를 비추는 사명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증언하려는 데 있다다양한 민족과 다양한 문화 가운데 사는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역군이 되어야 한다

 

정행업 목사<전 대전신학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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