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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4호]  2019년 1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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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믿음의 선진, 삼형제이야기 오윤선•오형선•오원선 장로(38) - 오형선 장로(14)
[[제1645호]  2019년 6월  8일]


맏딸 오중은과 강성갑 목사(2)


그러나 지역의 소위 유지들과 관리들에게는 강 목사가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경찰과 읍장 등은 거의가 친일분자였고강 목사는 일제 때 반일운동가였으니 더욱 대립될 수밖에 없었다특히강 목사는 졸업식과 같은 행사 시 지방 관서장들이 있는 자리에서 서슴없이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비판했다그리고 강 목사는 농촌이 잘 살려면 깨끗한 정치인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그래서 당시 지역의 경찰과 관리들은 그가 몹시 불편했다대개 일제 때 관리를 하거나 부역했던 그들은6.25전쟁이 발발했을 때도 피난민 구호금품을 빼돌리기에 혈안이었다그런 그들을 강 목사는 면전에서 질타하기도 했다

195082일 학교장 앞으로 진영 지서에서 한 통의 공문이 왔다학생들을 학도병으로 모집하겠으니소집하라는 내용이었다강 목사는 두말하지 않고 공문을 찢어버렸다당시 중학생은 학도병 대상이 아니었다그러자 지서장 김병희부읍장 하계백의용경찰대장 강백수강치순 등은 강 목사에 대한 보복을 공모했다

처형되기1주일 전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강 목사는 도망가지 않았다그는 평소 어린 중학생을 전쟁터로 보내 총알받이로 삼으려는 당국의 조치에 항의했고여성을 성폭행한 지역 경찰의 행동을 모른 척하지 않았다구호품을 빼돌리는 공무원도 강하게 질책했다지서장 김명희가 당시23세로 주위의 칭찬이 자자하고 미모가 뛰어난 진영여중 김영명 교사를 시종 탐내 오다가 오빠를 빌미로 잡아 강제로 능욕하고 학살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9506.25가 발발하여 공산군이 마산 근교와 낙동강까지 쳐들어오던 혼란기에 특무대에서 지서에 회색분자 명단을 요구했다지서장은 강성갑 교장과 학교재단 이사장인 최갑시의 명단을 건넸다군경은 그날 밤 강 목사를 체포해 수산교 밑으로 끌고 갔다그를 회색분자 혹은 공산주의자로 낙인찍은 이유는 이렇다

첫째그가 불온한 모임에서 자주 강연을 했다.(그를 부른 것은 농민들이었고 교회와 학교였다.)

둘째학교에 국기를 게양하지 않았다.(학교를 짓는 중이었다.)

셋째학교재단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생산된 성냥곽에 소련 국기와 비슷한 괭이가 그려져 있었다

넷째, ‘빨갱이’ 안창득 한얼중학교 이사의 선거운동을 도왔다.(안씨는 재판을 받고 복권돼2대 총선에 출마했다.)

다섯째학생들이 행사 때 삽이나 괭이를 메고 시가행진을 했다

여섯째졸업식을 밤에 하고학교에 써 붙인 표어가 모두 빨간 글씨였다.(표어란 성경구절이었다.)

일곱째교직원과 가족이 공동생활을 했다.(가난한 교직원과 가족은 한 푼이라도 비용을 아끼기 위해 공동생활을 해야 했다.)

여덟째학생들의 학도병 모집을 거부했다는 이유였다

군용 트럭은 창원군 마산리를 지나 일동리로 가고 있었다자정을 넘어가는 시간이었다달빛에 반짝이는 물결이 보였다낙동강이었다학살자들은 수산교 밑 나루터에 차를 댔다카빈총을 멘 군경에 등을 떠밀려 모래밭에 섰다음력 열여드레붉게 충혈된 달빛에 군인과 경찰의 얼굴이 보였다당시 살아남은 최갑시의 증언을 들어보면 총구가 강 목사를 겨누고 있었는데나는 목사이니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강성갑 목사는 담담하게 부탁했다고 한다인솔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여,이 죄인들을 용서하시옵소서이 겨레이 나라를 가난과 재앙에서 건져 주시옵고, ‘한얼’을 축복해 주시옵소서이제 이 죄인은 주의 뜻을 받들어 주의 품에 육신과 혼을 기탁하오니… 주여 남기고 가는 저들을 보호하옵소서아멘.” 총구에서 일제히 불이 튀었다강성갑 목사는 기도할 시간을 달라하여 기도를 마친 후 그 자리에서 총을 맞고 숨졌으나이사장 최갑시는 강물로 뛰어들어 허벅지에 총을 맞고 헤엄쳐 나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되었다

조향록 목사는천 명만 명을 주고도 바꾸기 어려운 큰 인재를 그렇게 해서 잃어버렸다나는6.25사변에서 귀한 인재들을 무수히 잃었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별이 강성갑 목사님이 아니었던가 싶다”고 회상한다그때 그의 나이는40도 못된30대 후반이었다

19548진영에선38세로 세상을 떠난 그의 장례식이 열렸다함태영 부통령을 비롯해 최현배백낙준 박사김영삼 등 정계 학계 교계 인사와 진영 인근 주민2~3천명이 참석했다

김해 한얼중학교 창립자인 강성갑 목사가 학살되자 미국 교계와UNKRA(국제연합한국통일부흥위원단)에서 문제를 제기했다이에 따라 미국 언론에서도 이 사건을 보도했고이승만 정부는 학살자인 김병희 지서장하계백 부읍장의용경찰대장 강백수강치순 등 학살 관련자를 구속시켰다재판부는 지서장 사형다른 공모자에게는 징역10년형을 선고했다지서장은 마을처녀 강간미수 및 살해 사실도 병과되어 있어 처형을 피하지는 못했다

선교사들은 강성갑 목사를한국의 페스탈로치’로 칭송했고교육학계의 원로 심진구 명예교수는1968년 쓴 논문에서한국 교육의 성자’로 칭송했다마을 유지와 군인과 경찰이 공모해 강성갑 목사를 죽인 이유는 단지공산주의자’라는 것 하나였다하지만빨갱이 잡기’에 앞장섰던 김동길 교수는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십자가를 골고다로 지고 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한국인 강성갑의 가슴속에 그대로 살아있다고 믿는다.” 박형규 목사도강성갑 목사는 해방 후 사회적 사상적 혼란속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분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고 술회하였다

설립자인 강성갑 목사의 별세 이후, 1951년 교육부장관이었던 백낙준 박사와 김재준 목사강원용 목사의 간청으로 조향록 목사가 한얼중학교 교장으로 취임하였고윤대룡(녹산중학교 초대 이사장)을 비롯한 녹산 유지들이 주축이 되어 학교 재건에 나서1953410일 녹산중학교가 설립되었으며그해1222일에는 학교법인 한얼학원 녹산중학교 설립인가를 받았다

학살자들을 용서해 달라는 강성갑 목사의 마지막 기도의 뜻에 따라 부인 오중은 여사는 지서장에 대한 선처를 정부에 호소하고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에 따라6남매를 양육시켰다

 

오장은 장로<새문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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