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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정류(靜流) 이상근 목사 (139)
[[제1614호]  2018년 10월  13일]

대구제일교회, 대구·경북 최초의 교회

5. 대구제일교회 (24)

 

정류의 후임은 정영환 목사였다.(이후는 정영환) 大韓예수敎長老會大邱第一敎會百十年史: 1893-2003』는 정영환을 대구제일교회 당회장으로 청빙한 것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상근 목사의 은퇴 시기가 가까워 옴에 따라 1989 10 당회는 후임 목회자의 인선을 위해 특별인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특별인사위원회는 당회장의 지도 아래 꾸준히 노력한 끝에 삼덕교회의 당회장이었고, 당시 미국 뉴욕의 한성교회 당회장인 정영환 목사를 당회와 제직회 그리고 공동의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의하여 정영환 목사가 부임하게 되었고, 1991 2 17 이상근 목사의 원로 추대식과 정영환 목사의 위임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정영환은 대구제일교회 부임 각기관들의 실상을 파악하여 발전책을 베풀며, 건축중인 새성전 건축공사를 지휘하면서분주하게 일과를 보내었다. 그는 대구제일교회에 부임한 이후대구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이 되어 대구의 교회를 지도하고, 많은 교회에 다니며 특별부흥회를 인도하였다.

정류는 1990-1991 표어를다같이 합심하여 성전 이룩하자 정했는데, 정영환은 표어를 이어받아 1992 표어를합심하여 성전으로 그리고 1993 표어는오직 하나님의 영광으로 정하였다.

정류의 목회 후반기에 시작되어 정영환의 목회 초기까지 이어진 예배당 이전 재건축 사업은 대구제일교회의 큰일이었다. 大韓예수敎長老會大邱第一敎會百十年史: 1893-2003』은 예배당 이전 재건축 사업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대구제일교회가 대구시 중구 동산동 234번지의 ( 대구성경학교[sic 영남신학교]) 대지를 구입하여 성전을 건축한 것은 분명히 교회의 신기원을 고하는 역사적 사실이었다. 그리고 일은 인위적인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운데서 성취된 일이었고, 너무나 큰일이었으므로 그간 수다한 어려운 고비들을 겪기도 했던 것이다.

 

대구제일교회의 예배당 대지 구입에 대한 기록은 역사적인 가치가 있어 적어 본다.

 

교회의 현재 대지(중구 남성로 50) 미국 장로회 선교부(당시 북장로회 선교부) 그들의 영남지역 선교 본부를 부산에서 대구로 이전시킨 이듬해인 1896 1월에 420평을 435 50전에 구입한 것이었다. 교회는 대지 위에 번째는 한옥에서, 번째는 140 되는 아연판 단층 성전에서 예배드리다가 1993년에 최재화 목사님의 헌신적 노력으로 성전을 완공하고, 대지도 인근 주택을 차차 매입하여 1,600평에 달하게 것이다.

 

남성로는 원래 대구읍성이 있던 곳을 헐고 새로 만든 도로였는데, 대구제일교회는 남성로에 자리잡은 대구 경북 최초의 교회였고, 전국적으로 저명한 교회의 하나로 인정되었지만, 지역적인 제약을 받았다. 그러다가 여러 가지 어려운 과정을 거쳐 대구 고등성경학교(후에는 영남신학교) 교지인동산동 234번지 9필지 3,642평의 대지 이전을 하게 되었다. 동산의 대지에 관한 이야기는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동산의 대지는 동산동 234번지 9필지 3,642평의 대지로 미국 장로회 선교부가 신명학교와 동산병원의 기지와 같이 구입한 것이며, 구입 시기는 교회  대지 구입의 시기보다 약간 후로 추측된다. 대지는 사실인 대구에 우리 개신교보다 64 먼저 전교된 가톨릭교회의 선교본부가 뻔하였던 땅이었다. 가톨릭교회 초창기의 선교사 바오로 신부는 땅을 서씨(達城徐氏) 가문으로부터 150냥에 구입하여 했으니 노인 신도들의 반대로 중단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천주교의 땅이 수도 있었던 대지 위에 있는 대구제일교회 바로 아래는 동산을 포기하고 평지에 터를 잡은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본당인 계산 성당이 있다. 동산 위의 대구제일교회의 첨탑과 평지에 있는 계산 성당의 첨탑이 어우러져 해질녘에는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한다. 그런 것을 보면 초기 대구 지역의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의 세상을 보는 안목이 대단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은 싫어서 버린 땅이지만 땅을 보는 안목이 있었던 그들은 땅이 가지는 가치를 크게 보았다. 그들은 남성로의 비좁은 대지에서 동산의 넓은 땅으로 영남선교지부를 옮겼다. 옮기는 일이 얼마나 번거롭고 일이 많았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대구와 경상도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섬긴다는 마음으로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동산으로 선교지부를 옮겨 그곳에 선교 지부를 새로 건축하고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웠다. 大韓예수敎長老會大邱第一敎會百十年史: 1893-2003' 대구제일교회의 100년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교회의 100년사 편집은 이미 90년사를 편집한 있는 이상근 원로 목사에게 위임하여 집필하도록 하였다.

당회의 위임을 받고 적은 정류의대구제일교회 창립에 대하여 ()에서 정류는 대구제일교회의 창립을 앞둔 상황에서 1893 배위량이 대구에 처음 들어 날을 대구제일교회의 창립일로 잡으면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100년사를 저작할 무렵 교회의 기원연대에 대해 전에 없던 이의가 제기되었다. 그것은 1893 4 22, 배위량 선교사의 대구 방문은 선교회의 기원은 있으나 제일교회의 창립일로는 부당하다는 반론이었다.

 

정류는 대구제일교회의 창립일을 1893 4 22일로 정한 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정확하게 이해하였고 그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1964 10 28일에 배위량 선교사의 대구 개척순방을 기점으로 교회의 창립 70주년 예배를 드렸을 당회에서 어떤 이의도 없었다. 발의자가 누구였는지 어떤 기록도, 기억도 남아있지 않다. 가지 분명한 것은 안이 전혀 이의 없이 결정되었다는 것이고, 그것은 80, 90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배재욱 교수

<영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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