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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정류(靜流) 이상근 목사 (136)
[[제1611호]  2018년 9월  15일]

결혼한 청년까지 아우르는 청년 2

5. 대구제일교회 (21)

 

정류가 담임 목사로 일할 청년 2부와 새교우부가 신설되었다. 역사를 더듬어 보고자 한다. 대구제일교회 90년사大韓예수敎長老會大邱第一敎會百十年史: 1893-2003 모두 틀린내용을 담고 있는 내용이 있어 37년여 만에 청년 2부의 역사를 보면서 바로잡을 필요성을 가진다. 아래대구제일교회 90년사 청년 2 창립에 관한 내용이다.

청년 2부는 대학 이후의 청년들의 모임으로 1981년에 임태진 장로와 서문부 목사의 인도로 조직되었다. 부원의 거의 전부가 교회학교의 각부에서 봉사하는 교사들이므로 회집 시간은 오후 1시부터 2 30분간이다.

저들은 주일이 되면 일찍이 교회에 나와 각부에서 가르치고, 주일 예배에 참석한 , 교회 식당에서 중식을 하고, 오후에 저들끼리 모여 성경 공부와 친목을하며, 다방면으로 사업을 한다.

 

아래는大韓예수敎長老會大邱第一敎會百十年史: 1893-2003 나타난 대구제일교회 청년2 창립에 관한내용이다.

청년2부는 대학 졸업 이후의 연령층의 청년들의 모임으로 1981 임태진 장로와 서문부 목사의 인도로 조직되었다.

부원 거의 전부가 교회학교의 각부에서 봉사하는 교사들이므로 회집 시간은 오후 1시부터 2 30 사이다.

회원들은 주일이 되면 일찍 교회에 나와 각부에서 가르치고, 주일예배에 참석한 , 교회식당에서 중식을 하고, 오후에 회원들이 모여 성경공부와 친목을 하며, 다방면에서 사업을 한다.

 

위의 내용을 보면대구제일교회 90년사大韓예수敎長老會大邱第一敎會百十年史: 1893-2003 거의 일치한다.

당시 청년 2 창립에 깊이 관여했던 필자는 두어 가지 오류를 수정할 필요성을 느껴 그것에 대하여 기록하고자 한다. 이것에 대한 필자의 기억은 거의 정확하다.

필자가 군생활에서 전역한 일자가 1980 6 30일이다. 전역 필자는 다시 모교회인 대구제일교회로 돌아와 신앙생활을 하면서 고등부 교사와 호산나 찬양대원으로 봉사했다.

그때 필자와 비슷한 또래 청년으로 고등부 교사로 활동한 사람이 있었는데 박월리와 오성현이었다. 전역 필자는 군대 입대하기 전부터 다녔던 청년부에 출석했다. 그런데 박월리와 오성현은 대구제일교회 청년부 출신이 아니었다. 그들은 나이 차이가 나서 청년부에 다니기가 쉽지 않아 고등부에서만 봉사하던 중이었다.

어느 박월리가 필자에게 대구제일교회에 출석하는 결혼 연령에 속한 나이든 청년들이 많은데 이들 대부분은 주일 오전에 모이는 청년부에 출석하지 못하고 있으니, 청년부에 출석하지 않는 나이든 청년들을 모아서 따로 예배를 드리자는 제안을 했다. 말에 흔쾌히 대답하고 함께 고등부 교사로 활동하는 오성현이 나이가 한두 많아 책임자로 다음 나이가 많은 필자가 부책임자로 맡기로 하고 필자는 필자의 고등부 동기인 이병렬과 하중연과, 중학교 고등학교 동기인 송준규와 문명철 그리고 ROTC 동기인 송현목을 데려오고, 청년부에서 활동하다가 당시에는 교회학교 부서에서만 봉사하는 신경조, 독고정희, 김명교 등을 데려오고, 박월리가 아동부 교사였던 석홍 등을 데려와 청년 2 창립준비 위원회를 만들었다. 청년 2 창립준비 위원회를 만든 후에 청년 2 창립 준비 위원들은 당시 청년부 부장이었던 김모 부장 장로에게 불려가서 청년 2부를 만들면 청년부에 혼란을 주게 되고 청년부가 분리되는 아픔이 있을 있다고 자제를 부탁했다.

우리는 기존 청년부 회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부에 소속되지 않는 나이든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청년 2부를 창립할 것에 대하여 말씀드렸다.

당시 대구제일교회는 1 예배와 2 예배를 드렸는데 창립준비 위원회 구성원들은 2개조로 나누어 1 예배 뒤와 2 예배 뒤에 교회 마당에 서서 회원 모집을 했다.

당시 우리는 결혼 연령층의 사람들이 서로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면 교회에 유익을 주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친교를 하고자 하는 공감했다. 이렇게 준비 위원회 체제로 있다가 1980년도 말에 창립예배를 드려 오성현을 회장으로 필자와 김명교를 부회장으로 총무를 석홍으로, 서기는 신경조, 회계는 송현목과 독고정희를 선임했다. 임원회에서는 김위규와 김일룡을 협동총무로 위촉하여 이미 결혼한 청년층까지 아우르는 청년 2부를 조직했다.

당회에서는 고은태 목사를 지도 목사로 임태진 장로를 부장으로 임명하여 분의 지도를 따라 청년 2부가 모였다. 당시 청년 2 지도 목사였던 고은태가말씀을 생활로 말씀을 설교에서 자주 하셔서 우리는 지도 이념을 따라 그것을 청년 2부의 표어로 삼아 예배실에 걸어 놓고 예배와 친교에 힘을 쏟았다. 1981년부터는 당시 부목사로 사역이 많았던 고은태를 대신하여 서문부가 청년 2 지도 목사로 일하게 되었다. 1981 3월이 되면서 필자는 장신대 신대원 입학으로 정든 청년 2 친구들을 떠나야 되는 아픔이 있었다.

대구제일교회 90년사 청년 2 행사 중에서 1981 10 23-24 양일간 모인 대구제일교회의창립자인 안의와 목사 기념 강연회를 처음으로 가져 좋은 전통을 시작하였다 기록한다.(창립자를 안의와로 보는 것에 대해서는대구제일교회 90년사 따라 인용한 것이다. 창립자를 배위량으로 것인가 아니면 안의와로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앞으로 역사가들의 연구와 토론이 필요할 것이다.) 청년 2부에 대한 기사 중에서 다음 기사는 특기할 만하여 적는다.

1982 8 12-14일간 동화사 가까운 백안교회에서 서울장로회신학대학의 서정운 교수를 모시고 가진 여름 수양회는 특히 감명 깊은 모임이였다.

 

대구제일교회는 지금도 새교우부 활동이 활발하여 타교회에서 목사와 장로로 활동해도 대구제일교회에 출석하면 새교우부에 등록하여 일정 기간 교육을 받는데 새교우부 신설에 대한 기사는 특기할 만하다.

교우가 등록하는 경우 그간 본교회에서는 3개월 마다 환영식을 개최하고, 교우들에게 교회 제반사를 소개하였다. 그러나 신입교인의 수가 더욱 증가하게 됨에 따라 그들을 안내 지도할 상설기관의 필요성을 느껴 1980 6 1, 새교우부를 신설하였다. [...] 교회에 등록한 교인은 새교우부에 참석하여 4주간 교회에 관하여, 성경과 신앙의 초보적 도리에 관하여 지도를 받으면 새교우부는 졸업하고, 다른 적당한 부서로 인도를 받게 된다.

 

배재욱 교수

<영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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