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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2호]  2018년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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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정류(靜流) 이상근 목사 (135)
[[제1608호]  2018년 9월  1일]

교회의 부흥, 예배당의 필요

5. 대구제일교회 (20)

 

대구제일교회는 안의와 목사만 당회원의 자격이 있는 반쪽짜리 당회로 모여 당회의 역할을 하다가 1907 6 28 최초의 장로인 김성호(金成浩) 박덕일(朴德逸) 장로로 세움으로 정식 당회가 구성되었다. 사람은 경상북도의 최초의 장로들이 되었다. 최초의 정식 당회를 구성하게 것에 대하여대구제일교회 90년사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날에 본교회 당회를 정식으로 조직 발족했으니, 당회장에 안의와 목사 서기에 박덕일 장로, 회원에 김성호 장로였다. 이렇게 조직된 당회는 성경의 진리와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을 구현하여 교회의 행정과 치리에 주력하였다. 먼저 문답을 후에 교인들에게 학습과 세례, 유아 세례를 베풀었고, 교인들의 믿음의 성장과 건덕에 힘썼다.

1907년은 한국교회가 대부흥을 받아 일어섰고, 독노회가 조직된 획기적인 해였는데, 우리 제일교회로서도 최초의 장로를 세워 당회가 정식으로 발족한 것은 역사적으로 기념할 일이며, 이로써 교회는 초창기를 지나 확립기로 접어든 셈이 된다.

대구제일교회의 번째 예배당은 배위량이 사비로 사들인 한옥이었다. 곳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교세가 성장함에 따라예배당이 협착함으로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내력을 보면 아래와 같다.

건축위원회를 조직하고 추진한 결과 교인들의 정성어린 헌금 6천원으로 1907 7월에 기공하여 1908년에 아연단층(亞鉛單層), 140평의 넓은 성전을 낙성하였다. 이것이 현재 벽돌 성전 이전의 구성전이있던 것이다.

안의와 선교사가 담임목사로 대구제일교회에서 목회하던 시절의 교회 활동을 보면 아래와 같다.

1909 7 15일에 새성전에서 김덕경(金德卿), 이만집(李萬集) 분이 장립되어 당회는 더욱 강화되었다. 최초의 4장로 박덕일, 이만집 장로들은 후일에 목사로 안수 받아 경북노회의 원로 목사들이 되었다.

1911 4 5, 우리 교회는 안의와 목사를 돕는 동사목사(同事牧師) 김천일(金千一) 씨를 초청하였다. 그는 우리 교회에 시무한 최초의 한국인 목사였으니, 빛나는 존재라 것이다.

대구제일교회 당회는 정류가 대구제일교회 목회하는 동안 1968 12 9전체적인 성전 중수를 것을 결의하였다.그런지 반년이 지난 1969 5 말에 자재를 구입하여 6 9일에 대구제일교회는성전 대중수에 착수, 상층 천장 개조와 강대 개조 수리 시작했고 동년10 11일에 모든 수리 개축공사는 끝났다. 1972 2 6 이상근 목사 사택건립을 결의하여 그해8 21 대구시 대명동 2445번지의 15정지작업을 건축공사를 착공하여 11 18한태철 목사의 인도로 준공 입주 예배 드렸다.

대구제일교회는 창립 80주년을 맞는 1973 1 28일에창립 80주년 기념 선교관 건립을 위하여위원회를 구성하고 1973 4 24 예배당 동편 담장에 인접한삼광병원 사택 부지를 선교관 부지로 구입 계약하였다.

대구제일교회에서 자라난 교인 중에 걸출한 음악가가 많았던 것을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19178 하순 찬양예배를 드림으로 성가대 역사가 시작되었다. 1917 7 박태원의 지휘로창립된 제일성가대는 전국적인 지휘자이며 음악가인 현재명 씨와 박태준 씨의 지휘로 해방 전에 벌써 활동이 왕성하여 영남지구의 교회 음악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그런데 당시 사회 관습상 남녀 찬양대원이 함께 연습하고 같은 자리에서 찬양하는 것에 대하여 문제가 되어 찬양대가 중단되었다가 1920년에 재차 박태원에 의하여남녀 혼성 성가대가 재출발하게 되었다. 제일성가대는 나중에 시온찬양대로 개명을 하였다. 호산나 성가대는교회가 은혜롭게 발전하면서 주일 낮예배를 II부제로 드리게 됨에 따라 성가대를 새로이 조직 운영할 필요성을 느껴 1966년도에는 대학생과 청년 회원을 중심으로 2성가대를 조직하게 되었다.필자도 대학생활 4 동안 지금은호산나찬양대 개명을 호산나성가대에서 대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당시 함께 찬양대원으로 활동했던 고등부 동기 임성혁(호산나성가대 대장이셨던 임덕빈 장로의 아들) 호산나찬양대의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대구제일교회의 교회학교에 관하여대구제일교회 90년사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전하고 있다. 대구제일교회 90년사 먼저 장년부를 말하는데, 장년부를 시작할 당시에 대구제일교회는 1 예배와 2 예배 사이의 30 동안에 모임을 가졌다. 지금은 2부와 3 예배 사이 40 동안 장년부 모임을 하고 있다. 교회는 장년부 모임을 하지 않든지, 한다고 해도 친교 중심의 모임을 하고 있는데, 대구제일교회는 오랫동안 예배 사이 시간에 장년부 성경 공부를 하고 있다. 필자는 영남신학대학교의 교수로 활동하면서 다시 대구제일교회로 출석하면서 10 이상 장년부 지도 목사로 봉사하고 있다.

1955 5 22일에 발족한 대학생회는 1958 1월에 이르러 청년면려회로 발전적 개편을 하게 되고, 따라서 과거 수십년 활동해 오던 청년면려회는 장년면려회로 개칭, 활동하게 되었다.

1952 3월에 대구제일교회 기독학생회를 조직하여 운영활동하여 오던 1953년부터는 중등부와 고등부로 분리되어 활동하게 하였다.고등부 1958년에 학생 주일학교가 중등부와 고등부로 분리되어 새롭게 조직되어고등면려회와 중등면려회로 각각 개칭되었다. 유년부는1912 4 8 당회에서 결의하고, 1913 3 13일에 조직 어린이 주일학교가 모체이다. 유년부의 초창기 이름은 “‘주일 소학교였으며, 완전한 조직체는 아니었으나, 주일학교 역사는 교회 역사와 같이 하면서 수많은 어린이들의 마음에 복음을 심어 주어 훌륭한 교인들로 길러 주었다.

배재욱 교수

<영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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