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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인색하고 인정없던 선배가 나에게 준 아픔
[[제1665호]  2019년 11월  23일]

6.25전쟁 전후로 우리나라는 너무나 가난했다당시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었다이 말은 가을에 추수하여 겨우내 먹다가쌀이 떨어지면 보리가 날 때까지 하루에 죽 한 그릇을 먹으면서 기다리던 어려운 시기를 말한다당시에 기름을 짜고 나면 찌꺼기가 남았는데 그 찌꺼기를깻묵이라고 불렀다먹을 것이 없어 깻묵을 먹던 어려운 시절이었다잘사는 사람들은 굶을 일이 없었지만 어려운 사람들은 하루 두 끼 굶는 것이 예사였다

내가 부산 맹학교에 다닐 때는 사회복지시설빛의 집에서 살고 있었다그때 원장의 실수로 정부에서 식량 배급이 나오지 않으면 냉수를 마시면서 굶고 지내고는 했다

200여 명의 학생들 중에는 부유한 자도 있고 가난한 자도 있었다나는 가난한 학생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학생이었다돈이 넉넉한 학생은 교과서를 사서 보았지만가난한 학생들은 용돈벌이를 위해 교과서 내용을 점자로 다시 찍어 한 장에5잘 주면7환씩에 바꿔 팔기도 하였다이것을 가리켜 일명삯 필기라고 하였다가난한 학생들은 밤을 새워 점자를 찍어가며 삯 필기를 했고장수에 따라 돈을 받았다

어느 날 고학년 선배였던 모 여학생이 나를 찾아와 두꺼운 고등학교 책을 점자로 찍어달라고 했다방에서 찍으면 동료들의 잠을 방해할 것 같아서학교에서 일하는 분께 부탁하여 교실에서 밤을 새워가며 찍어주었다

당시 그 여학생의 가정이 부자라고 소문 나 있었다그래서 어린 나는 용돈을 벌 기대에 피곤함과 졸음을 견디며 열심히 점자를 찍었다수고비를 받으면 먹고 싶었던5원짜리 대형 빵도 사 먹고목욕도 하고이발도 하고헌금도 하고짜장면도 사 먹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으로 열심히 했다그렇게 고생하면서 책을 완성했다그러나 그 여학생은 책을 받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삯을 주지 않았다이제나 저제나 줄까하여 아무리 기다려도 삯에 대한 말이 없었다결국 삯은 없었다당시 그 여학생은 후배가 선배에게 점자를 찍어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삯은 차치하더라도 고맙다수고했다는 감사의 말조차 없었다선배라는 지위를 이용해 후배에게 억압과 고통과 실망감을 안겨 준 것이다

그는 졸업 후 모 야간 대학을 거쳐 그 학교의 교사까지 되었다. “벼룩의 간을 빼 먹는다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여기에 해당될까나는 지금도 그의 횡포와 인색함인정없음을 생각하면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한이 느껴진다그런 인격으로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생각하니 제대로 학생들에게 인격이 담긴 교육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그는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 같은 악한 인간의 모습이었다더욱이 양심없는 비참한 인간의 모습이었다그는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큰 부자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어린아이인 내게 중노동을 시키고과자 하나빵 한 조각 안 사 주었으며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그에게 느낀 아픔이 아직도 내게 남아 있다

후배라는 이유만으로 어린아이의 배고픔과 졸음의 수고를 아무렇지도 않게 이용한 것에 대한 분노와 슬픔이 마음속에 앙금처럼 가라앉아 상처가 되었다그때 말이라도 고맙다고 했다면 이렇게 상처가 되어 아프지는 않았을 것 같다.가끔 어디선가 만났을 때 교만한 태도와 반말로 사람을 대하던 그의 오만한 횡포와 악함을 생각할수록 분노가 일어난다

그럼에도 그가 세상에 있을 동안에 겸비한 자세로 뉘우쳐 생각이 난다면 나에게 정중히 사과하기를 바란다이제는 그의 인정과 양심이 되살아나서 그 옛날의 사건을 기억하고앞으로는 나누어 주고 베푸는 삶으로 사랑을 실천하며 살기를 바랄 뿐이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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