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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 이승만의 정치투쟁- 한국인이여, 한국인이여(3)
[[제1640호]  2019년 5월  4일]


우남(雩南)이승만은18754.18(고종12)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났다. 3세 때 부모를 따라 서울로 이주배재학당에 입학했다일본인의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복수사건에 연루되었으나 미국인 여의사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했고 이 무렵 개화사상에 심취그리스도교에 입교하였다서재필의 지도하에 협성회·독립협회 등의 간부로 활약하면서 협성회 기관지 협성회보의 주필이 되어 날카로운 필봉으로 무능한 조정(정부공격에 앞장섰다. 1898년 정부 전복을 획책한 혐의로 투옥된 후 탈옥을 꾀하다가 붙들려 사형선고를 받았다종신형으로 감형 복역 중 민영환의 주선으로7년 만에 석방되었다다음은 그의 옥중에서의 심정을 읊은 일부의 글이다. “옥중에 지루한 세월이 거연히7년이 된지라 천금광음을 허송하기에 애석하여··· 수년 동안 논문 논설 짓기로 적이 회포를 말하더니··· 러·일 전쟁이 벌어지는지라 비록 세상에 나서서 한 가지 유조한 일을 이룰 만한 경륜이 없으나 이 어찌 남아가 무심히 들어앉았을 때리오강개 격분한 눈물을 금치 못하여··· 이 글 만들기를 시작하니···.” 

그는 석방된 후 미국에 건너가 미국 정부에 일본의 한국침략 저지를 호소하였고 조지워싱턴대학교·하버드대학교 등에서 수학하고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그 해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자 귀국조선기독교청년회연합회(YMCA)를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일본관에게 체포되었다미국인 선교사의 주선으로 석방된 후 다시 미국에 건너간 후1914년 박용만의 초청으로 하와이에서 잡지한국태평양'을 창간하고 한국은 서구 열강 특히 미국의 지지를 얻는 외교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면서 교포 사회에 독립정신을 고취했다그러나 박용만 등이 국민회를 분열시키고 좌파세력을 규합동지회를 결성한 후 무장투쟁론을 주장하자 대립하였다. 1917년 안창호 등과 협의해 뉴욕에서 열린 세계약소민족대회에 대표를 파견하였다. 19193·1운동 후 국내에서 조직된 한성임시정부와 상하이에서 조직된 임시정부에서 이승만을 각각 최고 책임자인 집정관 총재와 국무총리로 추대하자 그는19193·1운동으로 수립된 임시정부에서 초대 대통령으로 활동했다.(이 당시 김구는 임시정부의 마지막 주석으로서 이승만과 뜻을 함께 했다.) 이 기간에 둘은 줄곧 협력하면서1945년 해방 때까지 미국과 중국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그런데 이승만은 미국 워싱턴에서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를 설치하고 스스로 위원장이 되어 대통령으로 행세하면서 카리스마적인 성격을 드러낸 일이 발생했다그러자 임시정부 내부의 무단파로부터 불신을 받아1921년 상하이 임시정부 의정원에서 불신임 결의를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승만은 워싱턴군비축소회의를 비롯하여 미국 정부 및 국제연맹 등과의 외교교섭을 통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였다그 무렵 하와이와 워싱턴 등지의 재미교포 사회에서는 이승만을 따르는 우남파(雩南派)와 안창호를 지지하는 도산파(島山派)의 대립양상이 노골화되어 해외에서의 독립운동 노선에 분열이 나타났다해방 후 그는1948년 대한민국 제헌국회의원에 무투표 당선되었고이어 국회의장에 피선되어,대통령중심제 헌법을 제정·공포하고국회에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곧장 토지개혁(1949.4.27)을 단행했고 국내의 공산주의 운동을 분쇄했다이승만의 토지개혁은 경작자 소유원칙의 농지개혁으로 이 땅4,000년 역사 이래 대지주 혁파 즉소작농 경작의 종결을 뜻한다그리고 마침내 대한민국을 건국했다. 19506.25전쟁이 발발하자 미국과 유엔의 도움을 요청하여 공산군 침략을 격퇴했다그러나1952년 임시수도 부산에서 제2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계엄령을 선포반대파 국회의원을 감금하는 변칙적으로 대통령 직선제로 헌법을 개정하고 대통령에 재당선되었다. 1953년에는 미국의6.25전쟁 처리방법에 반대계속 휴전을 반대하다가 휴전성립 직전에 미국에 맞서 반공(反共)포로의 석방을 단행하여 전 세계를 놀라게도 했다. 1954년에는 자신의 경우에만 적용되는 종신대통령제 개헌안을 발의했다그러나 국회에서1표 부족으로 부결되었다그러자 사사오입(四捨五入)의 해석논리를 적용하여 번복통과시켜3선 대통령이 되었다.

1960.3.15 부정선거를 감행하여4선 대통령이 되는 분별없는 판단을 했고 마침내4·19 혁명으로 사임하와이 망명지에서 사망하였고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김동수 장로<관세사경영학 박사울산 대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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