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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 이승만의 행적, ‘민주독립운동’- 한국인이여, 한국인이여(2)
[[제1639호]  2019년 4월  27일]


이승만은31운동 발발 당시 미국 동부 필라델피아에 있었다. 5000여 명의 교민이 사는 하와이에서 한국 독립운동 활동을 하던 중 미국 본토로 건너왔다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여 한국 독립을 호소하기 위해서였지만,재미한인(在美韓人)이 먼저 독립 호소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생각이기도 했다그는 미국 독립의 본고장인 필라델피아에서 한인의회(Korean Congress)를 열어 독립을 선언한다는 뜻깊은 계획을 세웠다.국내에서31운동이 일어나기 한 달여 전이다그때 마침내 조국에서31운동이 발발했다.

필라델피아에서는 한인의회를1919414~16일에 열었다. 150여 명의 한인 지도자들이 사흘간 모였다서재필을 의장으로 선출하고 여러 결의문을 채택한 후 최종적으로대한공화국'을 수립할 것임을 결의했다미국은 한국의 영토 보전과 독립을 약속한1882년의 조미수호조약(韓美修好條約)의 당사국이라는 내용을 확인했다이승만은 한인의회의 이 결과를우드로 윌슨미국 대통령과 파리국제회의 등에 보냈다

그리고 독립기념관 앞에서 기미독립선언서(영문 번역분)를 낭독했다

현순 손정도 신익희 이회영 이시영 이동녕 이광수 신석우 조완구 여운형 김동삼 등 임시의정원29명은410일부터 밤샘 회의를 거쳐 국호를大韓民國'(대한민국)으로 확정하고 무기명 투표로 이승만을 정부 수반인 국무총리로 선출했다

그즈음(31운동 당시백범 김구는 일제 감시가 심해 황해도 안악지역 청년들의 만세운동 참여 권유를 사양하고 중국으로 망명할 준비를 하여 상하이 푸둥(浦東)에 도착했다

김구가 상하이에 도착할 즈음(1919.4.13) 국내외 여타독립운동가들도 대거 상하이 프랑스 조계지로 모여들었다. 31운동 이전100명이었던 상하이 한인 수는500명으로 늘어났다

마침내 상해임시정부(이하임정')가 선언되고 김구는 경무국장에 취임했다내무총장 안창호가 내린 직함이었다당시임정(臨政)'을 주도하던 안창호는상해(上海임시정부와 동시에 발표된 한성(漢城임시정부가 세상으로 하여금 우리 민족에 두 개 정부의 존재를 의심케한다” 하고 임시의정원 회의를 거쳐911일 한성 정부를 기본으로 하는 통합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탄생시켰다그리고 한성정부의 집정관 총재이자 상하이에서 정부의 국무총리로 선임된 이승만을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이상 살핀 사실만에 의해서도KBS TV에 출연한 김용옥 교수의이승만 미국괴뢰론’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물론 김용옥 교수는 북한 김일성도소련의 괴뢰”라고 하면서 소련(당시)이 한국을 분할 통치하기 위해 데려온 인물로 지적했다그러나 스탈린 대원수 산하의 소련군 군복을 입고 등장한 김일성과 중절모에 두루마기를 입고 등장한 이승만을 평면적으로 비교한 것은 잘된 비교는 아니다.

김용옥 교수는194512월 모스크바3상 회의의 신탁통치 문제에 대해친탁은 합리적반탁은 꼴통”이라고도 했다그런데 그 당시 민중은1945.8.15 일제가 패망했는데도UN이 한반도를5년간 더 신탁통치를 받도록 하겠다는 안()을 발표한 것에 대해서 한국인은 분노하고 반탁을 부르짖었다백범 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도 반탁에 앞장섰다이때 여운형 등 공산당 좌파는 머뭇거리다가1946년 초 스탈린 지시가 떨어지자 친탁으로 돌아섰다그 당시 이승만 주도의 반탁이 약하여 탁치국이 되었으면 한반도 전체가 스탈린 의도대로 공산화됐을 가능성이 컸다.

이승만은 해방 직후 하지 미(군정 사령과 사사건건 대립하며 사실상 대적(對敵관계였다이는 세상이 다아는 일이다당시 미군정은 이승만이 아니라 사실은 김규식여운형 좌우(左右)합작을 지원했던 것이다

한국(정치교수들이여특정 정치인을 공개 비판 평가하려면 제대로 하시라여운형은 해방 정국에서 임정(臨政)이 들어오기 전에 따로 건국준비위원회(소위建準)를 구성해 임정을 가로막으려 한 인사다여운형의 건준(建準)을 이은 공산주의자 박헌영의 조선인민공화국 건립 시도가 성공했다면 오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김동수 장로<관세사경영학 박사울산 대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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