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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가을이면 떠오르는 생각
[[제1568호]  2017년 10월  21일]


벌써 반세기 전이지만 대학생 시절의 가을은 너무도 많은 생각을 하곤 했다. 맑은 날씨, 마치 돌을 던지면 쨍그랑 하며 깨질 것 같은 파란 하늘, 거기에 차갑지도 않은 시원한 바람이 부는 환경이 가을이었다. 프랑스의 시인 레미 드 구르몽의낙엽’이라는 시() 중에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라는 구절을 되뇌고, 프랑스의 샹송 가수 이브 몽땅이 원래 불렀지만 우리에게는 프랭크 시나트라나 앤디 윌리암스의 목소리가 더욱 친근한 고엽(Autumn Leaves)을 흥얼거리며 우리의 젊음과 낭만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 하던 계절이 가을이었다. 그때는 1년이 자로 잰 듯한 4계절이었다. 매 계절의 기간도 거의 3개월이었고 기온이나 다른 모든 상황이 매년 똑같이 반복되는 틀림없는 계절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그러기에 가을에는 조금은 철학적이고 낭만적이어야 하는 것으로 여겼다. 더욱이 봄은 여성의 계절이지만 가을은 남성의 것으로 여겼기에 조금은 심각해지곤 하였다.

나라가 빈한했기에 우리 모두는 부족한 것에는 어느 정도 면역이 되었다. 그러나  미래는 좋을 것이라는 희망만은 버리지 않고 생활했다. 그러기에 못사는 현재의 생활이지만 장래에는 잘 살아보자는 염원을 갖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낭만’은 잠시 접어두고 모든 사람이 건설과 발전을 위해 바쁘게 생활했다. 짬짬이 모여 나누는 대화는 서로가 함께 이 난국을 헤쳐가자는 격려의 말들이 많았다. 당연하게도 이때 떠오르는 생각은어떻게 하면 더 보람있는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까?’ 하는 조금은 꿈같은 생각들이었다. 그러면서 나의 인생은 덧없이 흘러갔다.

세월이 어찌 흐르는지 모르게 지내면서 잠깐씩 나를 돌아보기는 했어도 주위의 분위기에 따라 나이만 먹어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돌아보니 나의 인생은 너무도 많이 와버린 것이다. 육신이 늙은 것도  물론이지만 정신도 예전 같지는 않아 때로는 나만의 섬에 있는 느낌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러면서 지금이 가을인지도 실감이 나지 않는 분위기에 휩싸이기도 한다. 정신을 차리고 나를 되돌아보니 나도 예전의 내가 아니고 주위의 사람들도 모두 변했다. 주위에 있던 친구들도 열심히 생활전선에서 활동하다가 은퇴하니 갑자기 홀로 된다는 느낌이 들어 당황하게 된다. 처음에는 정신없이 바빴던 생활에서 해방된 안도감도 들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동안에 쌓였던 인간관계도 서서히 소멸되어 간다. 자연스럽게 가을이라고 특별하게 떠오르는 생각도 없어지는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노인들을 위한 여러 가지 새로운 프로그램이 많이 개발되고 조금만 신경을 쓰면 이런 사회 활동에 참여하여 자기 계발과 함께 여가를 선용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다. 나는 오랫동안 다니고 있는 교회가 있다는 것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비록 나이가 들어 시무에서는 놓임을 받았지만 원하기만 하면 참여할 수 있는 부서나 모임이 많다. 학교 동창이나 여러 가지 모양의 사회적인 조직의 일원이 되는 것보다 더욱 편안하기 때문이다. 다만 어떻게 하는 것이 여기에서 나의 처신을 잘 하는가를 생각해보고 처신하기만 하면 된다. 참여시켜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기고 열심히 한 명의 조직원으로서 참여해야 한다. 행여 원로로서의 대접을 받을 생각일랑은 접어야 할 것이다.

시원한 바람, 높고 파란 하늘, 맑은 날씨의 가을엔 떠오르는 생각이 아름답다.

백형설 장로<연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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